금융 위기 中기업들 현금확보 전쟁

  • 입력 2008년 11월 28일 03시 03분


27일 중국 선양에 있는 부동산 회사 직원이 은행에서 인출한 돈을 세고 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최근 중국 기업들은 신규 투자를 줄이는 대신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선양=로이터 연합뉴스
27일 중국 선양에 있는 부동산 회사 직원이 은행에서 인출한 돈을 세고 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최근 중국 기업들은 신규 투자를 줄이는 대신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선양=로이터 연합뉴스
“현금은 인체의 혈액” 생산설비 투자 대폭 줄여

값 떨어진 국내외 기업 인수 자금 마련 포석도

‘이윤 없는 기업은 살아남아도 현금 없는 기업은 생존 못 한다.’

국제 금융위기가 중국 대륙에 본격적으로 밀려들면서 기업들의 현금 확보 전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경제전문 주간 징지관차(經濟觀察)보는 최근 “기업 운영에 필요한 최소 자금을 확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금융 불안으로 은행들이 보신을 위해 대출을 꺼리는 것에 대비해 기업 스스로 현금을 챙겨야 한다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 위기 때 기업의 현금은 혈액과 같은 것

중국 굴지의 가전업체 롄상(聯想)은 4년 전 IBM PC부문을 인수할 때만 해도 보유한 현금이 채 4억 달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롄상은 올해 3분기까지 15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 황웨이밍(黃偉明) 재무최고책임자(CFO)는 “지금 현금은 인체의 혈액과 같아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홍콩 최대 부자 리자청(李嘉誠) 창훙(長紅)실업그룹 회장은 이미 지난해 중반부터 주식투자 비율을 줄이고 현금 확보에 나섰다고 홍콩 밍(明)보는 전했다. 리 회장 산하 기업들은 총 221억 달러의 보유자금 중 69%를 현금으로, 나머지도 안정적 국채 등으로 갖고 있다고 밍보는 덧붙였다.

대표적인 인터넷 상거래업체 아리바바(阿里巴巴)도 2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나 ‘월동(越冬)’을 위해 올해 초부터 신규 투자를 일절 중단했다.

중견 제지업체 양광즈예(陽光紙業)그룹의 왕둥싱(王東興) 회장도 지난달 말 사내 회의를 통해 “‘자금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 환경이 나아지기 전까지는 생산능력을 늘리는 사업은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최대 원양해운업체 중국원양은 과거 분기별로 받던 운송비를 월별로 회수해 현금 확보 주기를 빨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금 회수율을 90%까지 올렸다. 이 업체는 이런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차라리 거래를 하지 않는다.

전자업체 화웨이(華爲)의 런정페이(任正非) 사장은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2004년 거시조정 이후 이번에 세 번째로 ‘현금 확보 비상령’을 내렸다. 외상거래 일절 사절 등 비상조치에 돌입했다.

○ 현금은 전략적 투자를 위한 비상 자금

국무원 산하 국유재산감독관리위원회의 리룽룽(李榮融) 주임은 이달 초 기업인 모임에서 “상당수 기업이 장부상으로만 자금을 가지고 있다”며 “이를 서둘러 현금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주임은 또 “금융위기로 자산 가격이 내려간 기업이 있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인수합병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며 “현금을 들고 있어야 최선의 시기에 투자와 기업 확장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일부 중국 기업의 현금 확보 목적은 가격이 떨어진 국내외 기업 사냥을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롄상의 황 CFO도 “롄상이 현금을 중시하는 것은 원활한 기업운영에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적절한 인수합병 대상이 나타났을 때 즉각 매입할 수 있는 ‘전략적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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