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 금융테러’ 두달… 세계경제 ‘탐욕 반성’ 계기로

  • 입력 2008년 11월 15일 02시 58분


헤지펀드 “위기 우리탓 아니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의 조지 소로스 회장, 르네상스테크놀로지LLC의 제임스 사이먼스 회장, 폴슨앤드컴퍼니의 존 폴슨 회장, 하빈저캐피털파트너스의 필립 팰컨 사장, 시타들투자그룹의 케네스 그리핀 회장(왼쪽부터)이 13일 미국 하원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선서하고 있다. 이들은 “헤지펀드는 금융위기의 주범이 아니며 문제는 고삐 풀린 금융시스템”이라고 항변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헤지펀드 “위기 우리탓 아니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의 조지 소로스 회장, 르네상스테크놀로지LLC의 제임스 사이먼스 회장, 폴슨앤드컴퍼니의 존 폴슨 회장, 하빈저캐피털파트너스의 필립 팰컨 사장, 시타들투자그룹의 케네스 그리핀 회장(왼쪽부터)이 13일 미국 하원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선서하고 있다. 이들은 “헤지펀드는 금융위기의 주범이 아니며 문제는 고삐 풀린 금융시스템”이라고 항변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원인 탈규제-민영화 강조 ‘워싱턴 컨센서스’ 한계 노출

결과 신흥국 ‘자산가치 폭락 → 국가부도위기’ 집중 타격

전망 국가간 공조강화 예상… “하이퍼 인플레 올수도”

반성 지구촌 분에 넘치는 호황의 종말 생생하게 목격

■ ‘리먼 파산’ 그 이후

추석연휴(9월 13∼15일)의 끝자락에 날아든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소식. 미국 뉴욕 월가(街)를 대표하던 글로벌 금융의 아이콘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줄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금융가에서는 이를 9·11테러에 빗대 ‘9·15’로 부른다. 그만큼 충격적이고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세계 경제에는 지옥 같았던 두 달이었다. 불신과 공포가 따라왔다. 모두가 “나부터 살고 보자”고 나서면서 돈 거래는 막혔고 자산 회수 열풍이 몰아닥쳤다. 국민소득 5만 달러가 넘는 아이슬란드는 하루아침에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위기는 순식간에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넜다. 미국이라는 절대 경제 권력의 붕괴를 조롱하던 나라들도 혹한(酷寒)의 계절을 준비 중이다. 분에 넘치는 호황과 탐욕, 방임의 끝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인간의 본성이 버블(거품)을 부른다는 각성도 생겨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는 ‘금융기관의 과다한 신용공급→자산가격 상승→버블 붕괴’라는 전형적인 경제위기 사이클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난 두 달은 대공황 이후 가장 이례적인 세계 자본주의의 터닝포인트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 워싱턴 컨센서스의 몰락

금융위기는 미국식 경제모델에 대한 경고였다. 9·11이 외부로부터의 충격이라면 이번 사태는 내부에서 촉발된 만큼 상처도 깊다.

일각에서는 탈규제와 민영화, 개방화로 상징되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한계를 노출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부가 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중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믿음은 이번 금융위기로 깨졌다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번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10년 전 한국이 처방했던 ‘관치의 극치’를 보여줬다.

지난 두 달은 기존 권위의 몰락을 상징하기도 한다. 과거 미국은 경제위기를 맞은 개발도상국을 질타하는 처지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관들, 그리고 과거 신흥국들에 ‘저승사자’로 불렸던 해외 신용평가사들의 명성이 추락했다. ‘경제대통령’으로 추앙받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비롯해 글로벌 증권사의 최고경영자(CEO)들, 헤지펀드의 ‘대부’들이 줄줄이 미 의회 청문회장으로 끌려나왔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는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앞으로는 정부의 역할이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미국을 대체할 대안이 마땅히 없는 만큼 당분간 기존 질서가 유지될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 최대의 피해자는 신흥시장

그동안 ‘몸집 불리기’에만 치중하지 않고 위험관리에 충실했던 금융기관들, 또 넉넉한 외환보유액과 강한 기초체력으로 무장한 나라들엔 지금이 시장의 패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구촌 어디를 둘러봐도 아직 뚜렷한 승자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신흥시장은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디레버리징(차입 감축)으로 이들 시장의 자산가치는 폭락하고 일부는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 가장 큰 성장동력인 수출도 선진 경제권의 소비 부진으로 활로를 잃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현재의 국제 금융체제는 개도국들에 불공평하며 이들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 상표가 붙은 금융위기의 억울한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아직도 진행 중인 위기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화할수록 보호무역주의나 자원국수주의가 준동할 가능성에 세계는 긴장하고 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함으로써 ‘발등의 불’을 끌 수는 있지만 경제효율을 떨어뜨리고 결국 전 세계를 궁핍하게 만드는 부메랑이 돼 날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의 경험은 이를 잘 말해준다.

이 때문에 각국의 동시다발적 금리 인하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 간 철벽공조를 통한 위기대처는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신경세포처럼 촘촘히 연결돼 가는 세계 경제 흐름에서 홀로 이탈하기에는 위험과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한국증권연구원 박연우 연구원은 “금융기관들은 레버리지(차입) 수준을 엄격하게 관리할 것”이라며 “경제 주체들의 투자 행태가 보수화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각국의 재정지출과 통화 증발로 인한 유동성 후유증 우려도 심각하다. 미국은 구제금융으로 인해 정부의 적자 규모가 내년에는 1조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뿌려댄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은 앞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 시대’를 열 수도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동아일보 영상뉴스팀 신원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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