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는 펀드분쟁이 없다”

  • 입력 2008년 10월 16일 02시 59분


■ IFA(독립투자자문인력)-펀드슈퍼마켓 현지 르포

펀드판매 13%가 은행-증권사들 간섭 안받아

독립된 전문상담가들 맞춤식 알짜정보 제공

한국처럼 실적-수수료 급급 무조건 추천 없어

9일 오후 2시. 싱가포르 도심에 위치한 독립투자자문회사인 프로비던드 사무실. 가정집 같은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진 이곳에서는 고객들의 펀드투자 상담이 한창이었다. 투자자들은 상담실에서 독립투자자문인력(IFA·Independent Financial Advisor)에게 펀드를 비롯해 보험, 부동산 등 다양한 투자 상품에 대해 조언을 받고 있었다.

이 회사의 에블린 고 부사장은 “고객 한 명이 투자 결정을 내리기까지 보험, 법률, 주식 담당 IFA 등 여러 명의 전문가가 장기간 상담을 한다”며 “고객과의 오랜 관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불완전 판매나 이로 인한 소송 우려가 없고 고객들도 투자금의 1%인 자문 보수를 기꺼이 지불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투자자들과 펀드판매회사 간에 법적 분쟁이 늘고 있는 가운데 IFA와 펀드슈퍼마켓 방식을 도입해 이런 분쟁을 해결한 싱가포르의 펀드 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는 이르면 내년 2월부터 IFA와 펀드슈퍼마켓이 도입될 예정이다.

○ 고객 만족도 높이기에 중점

싱가포르는 불완전 판매를 막고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2002년 IFA와 펀드슈퍼마켓 제도를 도입했다.

싱가포르에서도 2002년 이전에는 한국처럼 은행 지점 등을 통해 펀드가 주로 팔렸다. 그러나 IFA가 등장하면서 은행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IFA는 은행이나 증권사에 속하지 않은 ‘판매 자문사’로 펀드 투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보수나 수수료를 받는다.

판매실적에 따라 보수를 받는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에서는 투자대상금액 전체에 대해 보수를 지불한다. 자연히 IFA도 판매량보다는 투자자의 성향에 맞는 펀드 발굴에 관심을 가진다. 불완전 판매도 줄었다.

펀드리서치 회사 셀룰리에 따르면 현재 싱가포르에 등록된 IFA는 2500명. IFA들이 모여 만든 회사가 69개나 활동하고 있다. 도입 초기에 이들을 통한 펀드 판매는 2% 수준에 머물렀지만 2007년 전체 펀드판매 시장의 13%까지 성장했다.

자산운용사의 다양한 펀드를 한곳에 모아서 판매하고 있는 ‘펀드슈퍼마켓’도 새로운 판매 채널이다. 보통 인터넷을 통해 운영되는데 자산운용사들은 은행이나 증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펀드를 펀드슈퍼마켓에 공급한다. 싱가포르의 펀드슈퍼마켓 아이패스트에는 50여 개 회사에서 받은 400여 개의 펀드가 진열돼 있다. 투자자들이 이 사이트를 통해 펀드에 가입하면 은행에 지불했던 선취판매수수료 3∼5%를 아낄 수 있다.

○ 국내 판매 창구도 다양해질까

국내 판매 창구는 은행과 증권사 지점이 장악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점유율 상위 5개사의 판매 비중은 49.1%. 국내 주식형 펀드 두 개 가운데 한 개가 이곳에서 팔리는 셈이다.

지점에서 실적을 올리고 판매수수료를 얻는 데 급급하다 보니 상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판매하거나, 투자자의 투자성향에 맞지 않는 상품도 판매수수료가 높으면 무조건 추천하고 보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급락장에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판매 기관에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면서 국내에서도 판매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싱가포르=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