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엔 ‘불황 방파제’ 있다

  • 입력 2008년 9월 17일 02시 55분


경남 거제시는 기업과 도시가 합심해 상생모델을 만들어 가는 국내 대표 기업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위로부터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과 두 조선소가 추석 선물로 나눠 준 지역상품권이 풀려 활기를 띠고 있는 12일 거제시 옥포시장의 모습. 사진 제공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경남 거제시는 기업과 도시가 합심해 상생모델을 만들어 가는 국내 대표 기업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위로부터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과 두 조선소가 추석 선물로 나눠 준 지역상품권이 풀려 활기를 띠고 있는 12일 거제시 옥포시장의 모습. 사진 제공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근로자 4만8000명‘삼성重-대우조선의 힘’

《추석을 이틀 앞둔 12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시장. 불경기에 시달리는 다른 지역 재래시장과 달리 차례 음식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젊은 ‘새댁’들이 현금 대신 상품권으로 물건값을 치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거제시의 재래시장과 식당 등에서 유통되는 지역 상품권인 ‘거제사랑 상품권’이었다. 거제에 조선소가 있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서 추석 선물로 구매해 직원들에게 나눠준 상품권을 이용해 물건을 구입하는 ‘새댁’들의 표정은 밝았다.》

올 추석 27억어치 직원선물용 지역상품권 구매

작년 임금 2조9000억 등 경제 활성화 엔진 역할

10년 이상 무분규 노사관계도 거제 발전에 한몫

대우조선 옥포조선소는 ‘거제 사랑 상품권’ 22억 원어치를 구입해 직원들에게 올 추석 선물로 나눠줬다. 삼성중공업도 추석 직원 선물용 5억 원어치를 샀다.

거제시가 발행하는 거제사랑 상품권은 본사가 거제에 없는 대형 할인점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두 회사가 구입한 상품권은 재래시장 등 지역에 그대로 풀려 지역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재래시장 상권이 죽어가는 다른 지역과 달리 소득이 높은 조선소 직원이 많이 사는 거제도의 재래시장은 불황을 찾기 힘들다. 거제 시내 재래시장은 점포가 비기 무섭게 새 주인을 찾고, 10평 내외의 점포는 프리미엄이 3000만 원 정도는 붙는다고 한다. 인천 서구에서 정육점을 하다 올 4월 옥포시장에 정육점 ‘돼지랑 한우랑’을 개업한 이병은 씨는 “인천에서는 10명 중 7, 8명이 한 근에 얼마냐고 묻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묻는 손님이 10명 중 한두 명밖에 안 된다”며 “인천에서는 5000원어치 정도 사가는 손님이 가장 많은데 여기서는 대부분 1만 원어치 이상 사간다”고 말했다.

재래시장만 경기가 좋은 것은 아니다.

거제에서 가장 번화가에 있는 금강제화 거제점의 월평균 매출액은 3억 원이 넘는다. 부산, 경남에 있는 금강제화 12개 직영 매장 중 부산 서면점과 1, 2위를 다툴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 금강제화 거제점 직원 엄주현 씨는 “대우조선 월급날인 7일과 삼성중공업 월급날인 25일에 손님들이 많이 몰린다”고 말했다.

할인점 홈플러스 거제점은 비슷한 규모의 전국 20여 개 매장 중 매출이 가장 높다. 고객 한 명이 사가는 평균 구매액도 전국 평균보다 10% 정도 높다.

거제 경제의 힘은 세계 2위와 3위 조선업체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에서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2만2000명, 대우조선은 2만6000명을 고용해 두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거제시 전체 인구 21만5000명의 22.3%를 차지한다.

지난해 두 조선소가 임직원들에게 지불한 임금은 약 2조9000억 원. 양대 조선소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6000만 원 정도로 같은 해 도시근로자 평균 연봉 4410만 원보다 1500만 원 이상 많다.

2001년 이후 5년간 거제의 연평균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은 5.7%로 같은 기간 한국 경제의 성장률 4.7%보다 1%포인트 높다.

여기에 10년 이상 분규가 없는 양대 조선소의 안정적인 노사 관계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탠다. 노조가 없는 삼성중공업은 물론이고, 한때 강성 노조의 대명사였던 대우조선도 18년 연속 무분규를 이어가고 있다.

옥포시장상인회 한봉규 회장은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대우조선에 노사 분규가 있을 때는 장사하기가 힘들었다”며 “그런 기억이 있어서인지 임금협상이 진행될 때는 상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말했다.

지역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는 양대 조선소 덕분에 거제시의 1인당 평균소득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1인당 소득이 1만4000달러 수준이던 2004년 이미 2만 달러를 돌파했다.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 거제시의 1인당 소득은 3만 달러를 돌파했을 것으로 거제시는 추산한다.

‘한국의 기업도시’ 거제의 발전이 기업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김상훈(상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총무팀장은 “거제시와 지역주민들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 덕분에 조선소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공을 지역사회에 돌렸다.

거제시는 두 조선소와 조선 관련 협력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선해양경제국’을 시청 조직에 만들어 기업 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전 직원의 40%가 넘는 9000여 명이 참여하는 사회 봉사단을 만들어 지역사회의 지원에 보답하고 있다.

거제=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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