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약효 낮으면 인하” 제약사 “현실 무시한 결정”

  • 입력 2008년 8월 29일 03시 00분


■ 정부-제약사 ‘약값 재조정’ 날선 공방

《1000원 하던 혈압약이 어느 날 갑자기 600원으로 떨어진다면 어떨까. 구매자는 좋다. 평균 약값의 30%(암 질환은 10%) 정도를 내는 소비자는 부담이 300원에서 180원으로 줄어든다. 약값의 70%를 책임지는 국민건강보험공단도 700원에서 420원으로 부담이 준다. 하지만 제약회사는 억울하다. 매출액의 40%를 고스란히 날려버려야 한다. 통상 신약을 만드는 데 10년 이상 수천억 원을 퍼부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좋은 신약’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꺾일 수도 있다.》



최근 ‘기(旣)등재 의약품 목록 정비’를 둘러싸고 정부와 제약사 간 공방이 거세다.

기등재 의약품 목록 정비란 보험 적용을 받는 기존 약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경제성 평가를 실시해 비용 대비 효능이 낮은 약에는 보험 적용을 하지 않거나 값을 낮추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06년 12월 건강보험 내 약제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했고, 그 일환으로 지난해 4월부터 편두통 치료제와 고지혈증 치료제를 시작으로 목록 정비에 들어갔다.

5년간 실시되는 이 작업은 49개 약효군(群)의 1만6000여 개 품목이 대상. 사실상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의약품이다.

문제는 제약사들이 목록 정비의 적절성과 실효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지혈증(高脂血症·혈청 속에 지방질이 많아 동맥경화증 등을 일으키는 병) 치료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타틴(콜레스테롤을 줄이는 약제 성분) 계열 약은 7가지 계열로 나뉜다. 계열마다 최초 신약이 있고, 신약을 베낀 복제약도 수십 개씩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7가지 계열의 모든 약을 대상으로 사망률, 콜레스테롤 감소 정도 등 효능을 평가한 결과 약효에 큰 차이가 없자 가장 싼 약에 가격을 맞추기로 했다.

심평원은 올해 5월 “고지혈증 치료제 100여 개는 평균 가격이 가장 싼 심바스타틴 계열을 기준으로 가격을 맞춰야 한다”며 상당수 약 값을 내리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한 제약사 관계자는 “같은 고지혈증 치료제라도 환자 특성에 따라 쓰이는 약이 다른데 이를 무시한 평가”라며 “심지어 특허기간이 끝나지도 않은 신약이 복제약보다 싼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심평원 측은 “다른 약에 비해 뛰어난 효과가 입증되면 모르겠지만 약효에 차이가 없는데 늦게 나온 약이라고 해서 가격을 보호할 이유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달 20개 제약사가 고지혈증 치료제 재평가를 요구했고, 현재 재평가가 진행 중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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