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줄어 남은 돈 전직원이 ‘나눠먹기’

  • 입력 2008년 8월 19일 03시 01분


■ 공기업 부당 인건비 사례

감사원이 상반기 공기업 감사에서 적발한 인건비 부당·과다 지급 사례를 보면 공기업이 ‘혈세 빼먹기’에 얼마나 빠져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더 큰 문제는 과도한 인건비 지급 사례를 적발해도 이를 시정할 규정이 없어 사실상 환수 조치의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공기업 노조와 사측은 정부의 임금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채 노사협상을 앞세워 임금과 수당을 과도하게 인상했지만 환수 처분이 내려진 것은 과다 지급 금액의 0.12%에 불과했다. 나머지 99% 이상의 금액은 공기업 임직원의 주머니를 불리는 데 쓰였다.

이에 따라 민영화하지 않는 공기업에 대해서는 인건비 등을 관리·감독할 정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임금 산정 ‘멋대로’

정부가 정한 임금 가이드라인은 ‘참고사항’에 불과했다. 정부는 2∼3%의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대부분의 공기업은 각종 수당 신설과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통한 임금 보전 등의 방법으로 사실상 임금을 7∼8%까지 올렸다.

많은 공기업이 퇴직금을 산정할 때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을 올리기 위해 성과상여금을 평균임금 항목에 슬쩍 포함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2007년에만 29개 공기업(이번에 조사한 12개 공기업 포함)에서 454억 원의 퇴직금이 과도하게 지급됐다. 명백히 잘못 계산된 퇴직금이지만 회수는 없었다.

연봉제 전환과 같은 임금체계 개편을 임금 인상의 수단으로 교묘하게 악용하기도 했다.

한국전력공사는 2007년 4급 이하 직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기본연봉에 가족수당, 난방보조비, 급식보조비 등 각종 수당을 포함시켜 연봉월액(연봉의 12분의 1)을 높인 뒤 이를 기준으로 성과상여금을 과도하게 지급했다.

또 성과상여금 지급기준액(성과상여금 지급률과 곱해져 성과상여금을 산출하는 기준 금액)을 연봉월액의 100%로 설계(1, 2급의 연봉제 때는 63%였음)해 성과상여금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했다.

한전은 이런 방식으로 2007년에만 1177억 원에 달하는 인건비를 추가 지급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그러나 임금은 노사협약 사안으로 정부지침에 우선한다는 대법원 판례 때문에 과도한 임금 상승분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회수 조치를 못하고 있다.

○ 남는 인건비 나눠 먹고 수당 이중 지급

정원 변동에 따라 남게 되는 인건비를 연말에 시간외근무를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전 직원이 나눠 갖는 사례도 비일비재했지만 회수 조치는 없었다.

중소기업은행은 실제 근무에 따른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하고도 연말에 일괄 시간외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2005∼2007년 358억2700만 원이나 나눠 줬다.

교통보조비 등을 수년 전 기본급에 편입시켜 놓고도 몇 년 뒤 다시 비슷한 명목의 수당을 슬쩍 신설해 이중으로 지급하는 사례도 많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임금 인상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시늉을 하기 위해 인상률에 계산되지 않는 수당을 새로 신설하거나 이중 지급을 하는 행태는 공기업에서 근절되지 않고 있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철도공사가 수당을 과다 지급한 사안에는 회수 조치(5억8500만 원)를 내렸다.

○ 실적 부풀려 꿩 먹고 알 먹고

변칙 회계 처리를 통해 경영성과를 부풀린 뒤 정부로부터 높은 경영평가점수를 받고 성과상여금을 더 받아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한전은 발전소를 운영하는 자회사에 전력구입비를 실제보다 적게 주고 한전 본사의 수익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영성과를 부풀렸다. 자회사들도 한전의 실적과 연계해 상여금을 받기 때문에 전력구입비를 적게 받아 수익이 나쁜데도 성과상여금은 많이 받았다.

실적을 부풀리면 이익의 5%를 출연하도록 돼 있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의 적립금도 저절로 많아진다. 꿩 먹고 알 먹기다.

한국석유공사는 국가에 돌려줘야 할 국가보조금을 자신들의 수익인 것처럼 꾸며 사내근로복지기금을 과다 출연했다.

이렇게 쌓인 사내근로복지기금은 많은 공기업에서 경로효친비나 문화활동휴가비 등으로 전 직원에게 사실상 급여로 지급되고 있다.

편법 회계로 실적을 부풀린 사실이 적발됐는데도 성과상여금은 회수되지 않고 있다.

감사원 고위관계자는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회수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근거 규정이 없어 회수 조치를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22일에 내놓을 공기업 운영실태 종합 감사 보고서를 통해 기획재정부에 공기업의 인건비 과다 인상을 막을 수 있는 관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할 예정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