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도 OK" 신용카드 심상치않다

  • 입력 2008년 6월 23일 17시 25분


모집인 수2003년 대란때의 두배…고가경품도 남발

서울의 한 대학에서 행정 조교로 일하는 대학원생 김모(23) 씨에게 최근 한 카드사 모집원이 방문, 교직원 전용 카드에 가입하라면서 10만원 상당의 고급 브랜드 지갑을 건넸다.

김 씨가 "조교 월급이 나오긴 하지만 학위 과정을 마치면 사실상 무직인데 카드 발급 요건이 되느냐"고 묻자 모집원은 "가입 당시 소득 증명만 있으면 된다. 지갑 가격을 생각하면 남는 장사"라고 부추겼다.

김 씨는 "모집원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다른 카드사에서도 명함지갑을 들고 와 가입을 권하는 등 요즘 부쩍 카드사 모집원 방문이 잦다"고 말했다.

신용카드사들의 신규 회원 모집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카드 업계의 부실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카드채권 연체율이 높지 않아 2003년 카드 부실사태의 재현을 말하기에는 섣부르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살 깎아먹기식' 영업 경쟁은 카드사의 부실을 부르기 쉽고, 경기 상승세가 둔화되면서 과도한 카드 발급은 소비자의 신용 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 금융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모집인 수 카드 대란 당시의 2배

23일 카드 업계에 따르면 현장에서 카드 영업을 담당하는 카드 모집인 수는 카드 부실사태 당시인 2003년의 2배 수준이다.

5월 말 현재 모집인 수는 3만7675명으로, 2003년(1만7021)보다 121% 늘었다. 카드 대란 직전인 2002년 1억481만장에서 2007년 8957만 장으로 떨어졌던 카드 발급 장수도 3월 말 현재 9067만 장으로 늘어났다.

길거리 모집과 연회비의 10%를 초과하는 경품 지급 등 불공정행위도 다시 기승이다.

대형 할인마트 부스에서 핸드백 또는 냄비세트를 판촉물로 지급, 놀이공원 등에서 카드 발급 권유, 공무원 시험 합격자 발표장 등에서 발급 권유 등의 사례도 흔히 볼 수 있다.

무이자 할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카드사는 고객에게 카드 할부 수수료를 전체 할부 기간의 절반 어치만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카드회사간의 영업 전쟁은 지난해 시중 은행들이 비이자 수익을 늘리기 위해 카드 영업을 부쩍 늘린 데서 촉발됐다. 대표적으로 우리은행은 지난해 우리 V카드를 출시한지 1년1개월 만에 300만 장을 발급했다.

한 전업카드사 관계자는 "은행이 뛰는데 가만히 있다가는 시장 점유율을 잠식당하겠다는 위기감 속에 너나 할 것 없이 발 벗고 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이 지난해 11월 영세 가맹점 수수료를 최고 4.5%에서 최고 2.2%로 내리는 등 수수료를 내리면서 줄어든 이익을 고객 유치로 만회하려는 목적도 있다.

실제로 1분기 5개 카드사들(비씨 신한 삼성 현대 롯데카드)의 당기순이익은 635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3%나 줄었다.

● 아직 괜찮은 카드 연체율

카드사들은 1분기 5개 카드사 연체율이 3.52%로 지난해 말보다 0.27%포인트 하락했고, △2005년 10.06% △2006년 5.53% △2007년 3.79%로 줄고 있어 부실 우려는 크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2003년 카드사태에서 보듯 경기가 둔화되면 연체율이 단기간에 급격히 상승할 수 있고 한정된 시장 안에서 출혈 경쟁은 결국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내부에서도 자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개 카드사의 1분기 영입비용은 2조497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0% 늘면서 영업이익을 압박하고 있다.

이병구 여신금융협회장(롯데카드 대표)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과당경쟁은 결국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면서 "돌려 막기 등 연체 가능성을 감시하기 위해 도입한 복수(複數) 카드 소지자 공유정보를 현재의 '4개 카드 소지자'에서 3개로 낮춰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 여신전문총괄팀 김영기 팀장은 "카드사별 기동점검반을 통해 상호 감시를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감독 제도를 보완하는 등 직접 규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