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도 캄캄” 기업 경영계획 백지서 재점검

  • 입력 2008년 6월 16일 02시 58분


막힌 물류, 멈춘 공장“생산현황 0.” 화물연대 총파업 3일째를 맞은 15일 오후 충남 서천군 장항읍 한솔제지에서는 인쇄용지의 수출입 물량수송이 막혀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한 직원이 생산라인의 가동 상태를 알려주는 계기반(단위: MPM)에 ‘0’이라 적힌 숫자를 바라보고 있다. 서천=박영철 기자
막힌 물류, 멈춘 공장
“생산현황 0.” 화물연대 총파업 3일째를 맞은 15일 오후 충남 서천군 장항읍 한솔제지에서는 인쇄용지의 수출입 물량수송이 막혀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한 직원이 생산라인의 가동 상태를 알려주는 계기반(단위: MPM)에 ‘0’이라 적힌 숫자를 바라보고 있다. 서천=박영철 기자
‘직격탄’ 항공사 무급휴직에 항공기 매각도 검토

“내수 안좋은데 파업 겹치면…” 후유증 계산 안돼

한미 FTA에 악영향… 反기업으로 번질까 우려

한국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국내 기업들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원자재, 곡물가격 급등과 세계경제 침체 등 글로벌 경제 악재가 한꺼번에 몰려온 가운데 불법시위 장기화에 따른 법치주의 실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무산 우려, 화물연대 파업과 촛불시위에 편승한 노동계의 대규모 하투(夏鬪) 움직임 등 사회적 불안까지 겹치면서 경제계는 ‘시계(視界) 제로’인 상태다.

국내 상황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나빠지면서 기업들 가운데는 기업친화적 정부 출범 후 의욕적인 투자계획을 내놓던 데서 후퇴해 올해 하반기(7∼12월) 경영계획을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 하반기 사업계획 수정 움직임

최근 사회·경제적 상황이 악화 일로로 치닫자 각 기업은 심각한 위기감을 호소하는 한편 일각에서는 하반기 경영계획 수정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가 환율 등 각종 경제변수가 출렁이면서 적지 않은 기업이 올해 사업계획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며 “(사업계획 수정이) 재계 내부적으로 큰 이슈”라고 전했다.

전체 비용 중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항공업계는 연초에 세운 경영계획을 수시로 조정하는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지 오래다.

특히 대한항공은 이미 노선 조정과 감편에 들어간 데 이어 최근에는 보유 항공기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시장에서 소형차 판매 전략을 다시 설계하는 등 일단 부분적인 사업전략 조정에 들어갔다. 당장은 전면적인 사업 개편을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불안정한 경제 여건 속에 노조가 대대적인 정치파업에 돌입하면 어떤 후유증이 발생할지 몰라 긴장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그룹의 중장기적 성장 전략에 따라 투자나 고용 계획을 수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지만 전 계열사가 사업구조 및 조직, 원가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경영혁신운동’을 추진 중이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도 공식적으로는 당장은 사업계획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향후 사회 분위기를 더 걱정

재계가 더 걱정하는 것은 앞으로의 사회 분위기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와 올해 총선 때까지만 해도 ‘좌파 정권 10년’의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고 기업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지만 최근 나타나는 사회적 갈등은 시대를 거꾸로 가는 듯한 기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계는 또 시장경제의 전제조건인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국내외 기업의 투자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경제가 더 나빠질 경우 계층 간 갈등과 반(反)기업 정서가 심해질 것으로 걱정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한미 FTA는 어떻게 돼도 좋다는 식으로 비치는 일부 국민의 반개방주의적 성향 등은 언제든 이명박 정부의 친(親)기업 정책으로 표적을 옮겨 갈 수 있다”며 “벌써부터 공기업 민영화 등 각종 개혁정책이 좌파 세력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병욱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정부의 규제개혁 등 경제 살리기 프로그램에 제동이 걸리면 주요 기업들이 올해 초 전경련을 통해 밝힌 주요 투자계획이 지켜질지도 미지수”라며 “올해 한국경제에 돌발 변수가 너무 많다”고 우려했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철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철 기자

○ 내핍경영도 한계에 도달

기업들의 ‘쥐어짜기 경영’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CJ그룹 물류계열사인 CJ GLS는 “공회전 금지 등 고유가의 파고를 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으나 현재의 유가는 이미 버틸 수 있는 한계치를 넘은 것으로 판단되는 극한의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임직원을 대상으로 구조조정 전 단계로 비칠 우려가 있는 ‘무급 휴직제’를 도입했다.

CJ프레시웨이는 실내온도를 섭씨 26∼28도 수준으로 엄격히 유지하기 위해 실내온도 조절 담당자 옆에 온도계를 설치했고 올해 달러당 원화 환율을 950원으로 잡았던 CJ제일제당은 판촉비를 감축했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는 매장의 온도를 올리고 있고 신세계 이마트는 컴퓨터 자판기와 정수기에도 타이머 콘센트를 설치해 밤에는 전원 공급을 차단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사업장 내 차량 10부제와 출장 카풀을 적극 권장하는 한편 지방사업장 출장 등 먼 거리 이동을 화상회의나 음성문서회의 시스템으로 대체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생각보다 내수 침체가 심각해 관련 업종이 크게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비상경영 내용
기업비상경영 주요 내용
대한항공보유 항공기 팔아 현금 확보 방안 검토, 노선 감편 및 운휴, 마일리지 유효기간 단축.
아시아나항공무급휴직제 도입, 노선 감편 및 운휴, 마일리지 유효기간 단축.
현대자동차소형차 판매 강화 등 차종에 따른 판매전략 다시 설계. 경차인 뉴모닝 LPG모델 개발 등 고유가 대응 박차.
한화그룹전 계열사 사업구조와 조직, 원가구조 개선운동.
롯데그룹사무실은 물론 백화점 및 마트 매장 온도 올리고 매장 내 자판기에 타이머 및 조명제어기 설치해 폐점 이후 자동으로 가동 중단. 출장 교육 등 먼 거리 이동 줄이고 쌍방향 원격회의 시스템 활용.
신세계컴퓨터 자판기와 정수기에 타이머 콘센트 설치해 야간 전원공급 차단.

산업부 종합

정리=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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