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은 선진국 수준… 연봉은 의사의 1/3”

  • 입력 2008년 4월 20일 20시 19분


한국기계연구원의 A 선임연구원(42)은 최근 지방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고교 동창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허탈감에 빠졌다.

연구 성과를 내려면 늘 새로운 공부를 해야 하고 외국 유수의 저널에 논문을 싣기 위해 피를 말리는 자신과 달리 친구는 전문의가 되기 전 얻은 지식만으로도 의사 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연봉은 오히려 3배 가까이 많았다.

A 연구원은 "노력한 것에 비해 과학기술인에 대한 경제·사회적 대우가 너무 약하다"며 "수학과 과학을 잘하는 중학생 딸은 과학자가 아닌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인재를 과학기술계로 이끌 '당근'이 없다.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은 처우 등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심하다. 과학기술인으로 이들이 만족하는 가장 큰 부분은 '적성 발휘'(81.5%). 너무나 당연한 항목에 10명 중 8명이 동그라미를 친 것이다.

●연구 여건과 정부 정책 "불만"

과학기술인들은 한국의 연구 여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사 대상 과학기술인 세 명 중 한 명은 한국의 연구 환경이 나쁘다고 답했다. 반면 여건이 좋다는 응답은 16%에 그쳤다.

하지만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49%는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은 된다고 답했다. '세계 최고'와 '세계 선두권'이란 답변도 29.5%였다.

강태진 서울대 공대 학장은 "연구 성과와 수준에 대한 자부심은 높지만 과학기술인들이 원하는 만큼 경제, 사회적인 지원이 없다는 불만을 나타낸 결과"라고 말했다.

정부의 과학기술 관련 정책에 대해선 71.5%가 비효율적이라고 답했다. '효율적'이라는 응답은 3%에 지나지 않았다.

2000년 이후 정부가 이공계 기피를 막기 위해 내놓은 대표적인 정책인 '이공계 장학금'과 '과학고 및 영재교육 확대' 등이 도움이 된다는 답은 10%에도 못 미쳤다.

김기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성과에 대한 확실한 인센티브라도 도입해 실력 있는 이공계 인력들의 임금 수준을 높이는 등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공계 정원 줄이고 원천기술 확보해야

한국 대학의 이공계 인력 공급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과학기술인들 중 56%가 한국 대학의 이공계 정원이 많다고 답한데 비해 적당하다는 응답은 35%에 그쳤다.

대학원의 이공계 정원도 49.5%가 많다고 답했다.

임경순 포스텍 교수(과학사)는 "현재 대학의 이공계 규모와 구조는 1970~1980년대에 짜여져, 핵심 산업 위주로 개편되는 추세에서는 공급 과잉을 낳기 쉽다"고 지적했다.

민철구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이공계 정원의 20~30%를 줄이고 탁월한 소수를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앞으로 10년 동안 국가에서 가장 집중해야 할 분야로는 '기초과학 연구'(39.59%)와 '응용과학 연구'(38.71%)를 꼽은 과학기술인이 가장 많았다.

진미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인적자원연구본부장은 "산업기술은 기업이 개발할 수 있으므로 국가 차원에선 원천기술 확보에 필요한 기초·응용과학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

홍수영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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