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 안맞는 한말씀’에 금융시장 널뛰기

  • 입력 2008년 3월 27일 03시 01분




《“지금 긴급 사항은 물가를 잡는 것이다.”(이명박 대통령)

“대통령이 ‘성장보다 물가가 우선’이라고 말한 것처럼 보도됐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최근 원-달러 환율이 1030원까지 갔는데 이는 천장을 한번 테스트해 본 것이다.”(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성장과 물가, 환율, 금리 등에 대해 경제정책 수뇌부가 조율되지 않은 ‘불쑥 발언’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최고위 당국자들이야 각자의 합리적인 논리와 소신으로 주장을 펴고 있겠지만, 엇갈리는 목소리가 거듭되면서 금융시장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보는 것이다.》

재정부‘금리인하-환율상승’필요성 강변

강 장관은 지난달 29일 취임 이후 환율 주권론자이자 성장론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직간접으로 시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요약하자면 물가보다는 성장과 경상수지를 위해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과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환율은 급등했고 시장금리는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성장보다 물가에 신경 써야 한다는 반론이 이어졌고 대통령은 22일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발언을 했다. “지금 시급하게 우리가 정책을 펴 나가야 되는 긴급 사항은 물가를 잡는 것이다.”

그런데 강 장관이 25일 저녁 한 강연에서 이 같은 해석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를 성장보다 우선시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보도되면서 외환시장에 혼선이 있었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강 장관은 내친김에 “10년 전 경상수지는 악화되는데 원화는 절상되면서 외환위기를 맞았는데 지금 상황이 (그때와) 유사하다”며 금리 인하와 환율 상승 용인 필요성까지 역설했다.

26일 최중경 재정부 1차관도 거들었다.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 차가 2.75%포인트까지 벌어졌는데 내외 금리 차가 크면 외국 자금이 급격히 흘러 들어오고 나가는 시장의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

청와대“대통령도 재정부와 같은 생각”

이를 두고 “강 장관이 대통령의 말을 뒤집었다” “경제정책 컨트롤타워가 실종됐다”는 등 시장의 해석도 다양하다.

26일 시장은 강 장관의 발언을 두고 “대통령의 발언을 번복했다”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재정부와 청와대 고위 당국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강 장관의 발언은 청와대와 깊은 조율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 고위 당국자는 “22일 대통령의 발언록을 살펴보면 ‘지금 가장 급한 정책은 물가이지만 7% 성장 전략은 계속된다’고 분명히 나와 있다”며 “그런데도 시장이 성장 정책이 후순위로 물러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어 강 장관이 이를 바로잡아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발언의 정확한 의도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라는 뜻.

청와대 당국자는 “곽승준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나 김중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하루에도 2, 3차례 수시로 통화를 할 정도로 접촉이 잦은데 강 장관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면서 청와대 수석들과 의견 조율이 없었겠느냐”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대통령 발언이 성장보다 물가를 중시한다는 식으로 보도됐는데 이건 대통령의 진의와 좀 다르다”고 설명했다.

한은“물가안정 최우선”정부와 대립각

주목되는 것은 한은의 대응이다.

이 총재는 그동안 “한은의 최고 목표는 물가 안정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030원까지 갔는데 이는 천장을 한번 테스트해 본 것이다”는 등의 발언으로 강 장관과 맞서왔다.

한은은 “금리를 낮추면 총수요를 자극해 수입이 늘고 경상수지 적자폭이 늘어난다”며 “경상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재정부 주장에 정면 반박했다.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 경상수지가 3개년에 걸쳐 연평균 3억7000만 달러 개선된다는 실증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환율정책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정부의 고유 권한이지만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한은은 정부의 환율정책에 대해 협의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돼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환율이 안정돼야 한다”는 견해다.

환율 20.9원 급락했다 10.5원 급등… 멍드는 시장

강 장관의 발언이 알려진 26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50원 급등한 986.8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전날에는 이 총재의 ‘천장 테스트’ 발언으로 원-달러 환율이 20.9원이나 급락했다. 정책 당국자들의 엇갈린 발언이 거듭될 때마다 출렁이는 것이다.

금리도 마찬가지.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주말 이 대통령의 물가 중시 발언으로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24일 0.11%포인트 급등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자들이 정제되지 않은 말을 쏟아내면서 시장을 안정시키기는커녕 나서서 변동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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