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개발은 아무나 하나”

  • 입력 2007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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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자원 개발 자금 조달을 위한 유상증자 결의를 했다.”

“(해외에서) 액화천연가스(LNG)사업자로 선정됐다.”

“가스가 발견됐다.”

코스닥에 상장(上場)한 정보기술 업체 A사는 올해 7월 이후 해외 유전 개발 관련 공시를 잇달아 냈다. 주가는 7월 24일 1900원에서 6거래일 만에 4230원으로 122.6% 치솟았다.

하지만 큰소리를 쳤던 해외 유상증자는 연기됐다. 이 사실이 공시되기 직전에 이 회사 2대 주주는 보유 지분 일부를 주당 평균 4132원에 팔아 치웠다. 주가는 이달 4일 2040원까지 떨어졌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최근 “A사가 자원 개발 테마를 이용해 가스유전 개발 관련 허위 내용을 공시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려 부당 이득을 취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초보 기업’ 무턱댄 자원개발 사업 추진… 투자 주의보

고(高)유가가 지속되면서 해외 유전 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업체들이 급증하고 있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과 맞먹는 이상(異常) 과열로까지 번지고 있다.

하지만 자원 개발 경험이 거의 없는 업체들이 성공 확률이 낮은 해외 유전 개발 사업에 무모하게 뛰어들어 투자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많다.

“유전 발굴 자신” 큰소리 전문가들 집요한 질문에 “신만이 안다” 황당 답변

○ IT기업 등 자원 개발 뛰어들어

5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해외 유전 개발 신고 건수는 2004년 5건에서 지난해 24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도 8월까지 지난해 연간 신고 건수와 같은 24건이 접수됐다.

해외 유전 개발 신고가 크게 증가한 데는 자원 개발 경험이 없는 정보기술(IT) 기업 등이 해외 유전 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 개발 경험이 전혀 없는 업체의 해외 유전 개발 신고 건수는 2005∼2006년 2, 3건에 그쳤지만 올해 들어선 8월까지 15건이 접수됐다. 이는 올해 자원 개발 기업의 전체 해외 유전 개발 신고 건수(9건)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이들 ‘초보기업’의 상당수는 코스닥에 상장한 IT 관련 업체로 알려져 있다. 최근 부진을 겪고 있는 IT업체들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해외 자원 개발을 택하거나, 투자 자금 확보를 위해 해외 자원 개발을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국내 기업의 자원 개발 관련 공시는 44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12건보다 298.2% 급증했다. 또 40곳 이상의 코스닥 기업이 올해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자원 개발 관련 대기업의 한 임원은 “중소업체가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진출했다는 얘기는 많지만 성과에 대한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며 “탐사 광구의 경우 성공 확률이 15%에 불과하고, 세계적인 자원 개발 기업의 성공 확률도 30∼40%에 그친다”고 말했다.

○ 허위 공시로 주가 띄우고 정정 공시로 면피

자원 개발 업계는 해외 자원 확보를 위해 민간부문의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투자 계획이 남발되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내 한 자원 개발 전문가는 “최근 한 자원 개발 기업이 개최한 공청회에 참가했다가 깜짝 놀랐다”며 “유전 매장 가능성을 자신하던 주최 측은 전문가의 질문 공세가 집요하게 이어지자 ‘매장 여부는 신(神)만이 알 수 있다’며 황당한 답변을 늘어놨다”고 전했다.

일부 기업은 산자부에 해외 유전 개발 사실을 신고한 사실만으로 “정부가 사업성을 공인한 것”이라고 과대 홍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업 타당성 검토와는 무관하고, 규정에 따라 해외 자원 개발 사실을 신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정부 측은 말한다.

산자부 당국자는 “사실과 다른 허위 공시를 해도 곧바로 정정 공시를 하면 경미한 처벌만 받는 공시제도에도 문제가 있다”며 “해외 자원 개발 공시 이후 주가가 이상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증선위는 최근 자원 개발 테마를 이용해 5개사 주식을 불공정 거래한 7명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증권업계의 한 자원 개발 담당 애널리스트는 “유전 개발은 10곳에 투자해야 1, 2곳에서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1, 2개 유전에만 참여하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자금력이 부족한 회사일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은 유전 개발에 투자하기 힘들다는 점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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