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우]빚더미 공기업, 나랏빚 키운다

  • 입력 2007년 6월 20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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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대란의 와중에서 최고 수준 직장에 동시 합격해 선택을 고심하는 행운아가 있다. 특히 최고 수준의 사기업과 금융 공기업에 동시 합격한 경우 선택은 정말 어렵다. 사기업으로 가면 한 달도 안 돼서 후회하고, 공기업으로 가면 10년 후에는 필히 후회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예언이 젊은이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사기업과 공기업에 근무하는 커플이 결혼하면 신혼여행 일정 맞추기가 어렵다고 한다. 공기업은 다른 휴가를 몰아 쓰면 2주 이상도 가능한데 사기업은 결혼휴가가 빡빡해 조정이 어렵다는 얘기다. 이렇게 공기업 경영이 방만으로 치달은 데는 민영화라는 시급한 과제를 뒷전으로 돌리고 논공행상형 낙하산 인사를 투입하고 채산성 없는 선심성 사업을 떠안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공기업 감사들이 남미 이구아수 폭포의 물소리를 들으러 장기간 외유를 떠난다기에 경영이 잘되고 재무상태가 건전하리라 믿던 국민은 날벼락 같은 뉴스를 접하게 됐다. 한국은행은 2006년 말 현재 공기업의 부채규모가 296조 원으로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 말의 195조 원에 비해 52% 늘었다고 발표했다.

2006년 한 해 동안 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례는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에서 찾을 수 있다. 주택공사는 전년도에 비해 9조 원, 토지공사는 7조 원 늘어나 2006년 말 현재 각각 31조 원과 20조 원의 부채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 건설교통부 산하 공기업의 부채가 급증한 이유는 신도시 개발과 임대주택사업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신도시 개발 사업은 대규모 토지보상금을 풀어 인근 지역 지가를 들쑤셔 놓았을 뿐 사업성이 불투명한 경우가 여러 곳에서 등장했다. 임대주택사업의 경우 민간기업의 참여가 저조한 것으로 보아 주택공사가 떠맡은 사업도 수익성 전망과 원금 회수가 불투명해 보인다.

공기업은 사기업에 비해 책임의식이 부족해 경영효율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민영화가 문제해결 방안으로 거론되는데, 민영화 이전이라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역대 정권마다 공기업 사장과 감사직을 공신등급에 따른 감투로 내돌리는 바람에 직원의 사기와 경쟁력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근래에 와서는 정부 예산으로 집행할 사업까지 공기업을 동원하고도 공기업 부채는 국가채무가 아니라면서 눈가림식 통계를 내놓고 있다.

부채는 미래에 현금 지출을 수반할 것으로 확정됐거나 예상되는 의무로서 형식이 어떻든 실질적 부담에 따라 계상해야 한다. 부채를 산정하는 이유는 미래에 재정 수요를 유발시키는 요인을 적절히 추정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국가예산으로 메워야 할 공기업의 확정채무뿐만 아니라 정부의 보증채무, 공적연금 부족분, 손실보전약정, 민자유치사업(BTL) 미지급금도 모두 국가부채에 포함시켜야 한다. 국제기준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기준으로 측정해 국제비교에 사용하더라도 국내 실정에 따라 집행한 사항에 대해서는 미래 재정 소요가 적절히 반영되는 방식으로 국가부채를 산정해야 한다.

정부는 국유재산을 들먹이며 국가부채가 괜찮은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유재산 중에서 돈 될 만한 주식 등은 이미 대부분 처분해 버렸고 국가운영상 팔 수 없는 재산으로는 부채를 갚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의 ‘국가부채 안심론’에 의지해 대선후보마다 대규모 재정 소요가 따르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국가부채의 실상을 정확히 측정해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국가 장래가 걸린 중요한 국정과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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