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형 펀드 운용실태] 당신의 펀드 안녕하십니까

  • 입력 2007년 6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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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펀드 규모의 급증 추세에 비해 운용 인력인 펀드매니저가 모자라 운용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자산운용업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최근 펀드 규모의 급증 추세에 비해 운용 인력인 펀드매니저가 모자라 운용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자산운용업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최근 P운용사의 주식형 펀드에 가입한 회사원 L(36) 씨는 운용사 홈페이지에서 ‘대표 운용 인력’ 현황을 점검하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L 씨의 펀드매니저는 자신이 가입한 펀드 외에 5개의 주식형 펀드를 더 운용하고 있었다. 혼합형 펀드를 합치면 몇 개를 더 운용할지 걱정이 됐다. S(30·여) 씨도 최근 거래 은행에서 추천한 펀드 정보를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국내 10대 운용사 중 하나인 S사는 ‘고배당 펀드’ ‘가치주 펀드’ ‘기술주 펀드’ 등 운용 방식이 상당히 다른 주식형 펀드를 매니저 5명이 ‘공동 운용’하고 있었다.》

최근 저금리 기조로 시중에 돈이 넘쳐나면서 주식형 펀드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하지만 펀드매니저 1인당 운용하는 펀드 수가 많은 데다 운용 규모도 선진국보다는 작지만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어 급변하는 증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펀드매니저 운용 부담 늘어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주식형 펀드 수탁액은 올해 5월 말 현재 순수 주식형 55조4394억 원, 혼합형 41조5080억 원으로 총 96조9474억 원에 이른다. 2003년 말 46조9750억 원에서 2.1배로 증가했다.

펀드 수도 5월 말 현재 주식형 890개, 혼합형 3063개에 이른다.

하지만 실제 주식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는 2003년 말 276명에서 올해 5월 말 현재 373명으로 약 3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미국자산운용협회가 발간한 ‘2006년 세계펀드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42개국 중 펀드 자산 규모로는 14위였지만 펀드 수는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3위였다.

이에 따라 펀드매니저 한 사람이 운용하는 펀드가 주식형과 혼합형 펀드를 합해 평균 10.6개, 금액으로는 2599억 원에 이르러 부담을 느끼는 펀드매니저가 적지 않다.

본보 취재팀이 국내 10대 자산운용사 소속 주식 펀드매니저 75명을 대상으로 ‘적정 운용 펀드 수’를 조사한 결과, ‘5개 이하’라는 응답이 92%(69명)를 차지했다.

하지만 실제 운용 펀드 수는 ‘5∼10개’가 53%(40명)로 가장 많았고, ‘10개 이상’도 16%(12명)에 달했다.

신영투신운용 허남권 상무는 “운용 펀드가 많으면 매니저는 운용에 주력하기보다 관리에 급급하게 된다”고 했다.

‘펀드 최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전체 펀드매니저 수는 집계되지 않지만 1인당 평균 운용 펀드 수는 훨씬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 측은 “운용 펀드 자산 규모가 약 2807억 달러(약 258조 원), 투자 전문인력이 약 900여 명으로 펀드매니저 1인당 운용 펀드는 평균 2, 3개를 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프랭클린템플턴 관계자도 “미국 내 주식에 투자하는 프랭클린주식그룹은 펀드매니저 등 투자인력 40명이 약 1004억 달러 규모의 100여 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며 “한국에 비해 운용 인력에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밝혔다.

○펀드자금 급증에 부실 운용 가능성도

일부 운용사에서는 적은 인력으로 다양한 구색의 펀드를 갖추다 보니 가치주, 배당주, 성장형, 기술주 등 운용 방식이 전혀 다른 펀드를 펀드매니저 1명이 담당하거나 ‘팀 운용’ 방식으로 공동 관리하는 등 펀드 운용에 적잖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 국내 50개 자산운용사 중에서 주식 펀드매니저가 10명 이상인 회사는 10곳에 불과하고 5명 이하가 18곳에 이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가치주, 기술주 등은 서로 다른 투자 철학을 갖고 있어 공동 운용하기 어렵다”며 “팀 운용은 매니저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아무도 운용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펀드매니저 B(44) 씨는 “기관 설명회에 불려 다니느라 기업 탐방이나 운용에는 소홀해진다”고 털어놨다.

3개월 6개월 등 단기 수익률로 펀드매니저를 평가하는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펀드평가회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2005∼2006년 기준 45개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근무기간은 평균 2년 6개월에 불과했다. 이 기간 이직률도 51.9%로 매우 높았다.

CJ자산운용 이승준 주식운용1팀장은 “펀드매니저의 성과를 단기로 평가하다 보니 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며 “경험이 적은 펀드매니저는 하락장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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