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라”

  • 입력 2007년 6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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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 반도체 회사 인텔의 인류학자들은 중국 가정을 방문해 가족 구성원을 인터뷰하고 일상생활을 관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인텔은 이 과정에서 중국 중산층이 PC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실제론 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녀 공부에 PC가 방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인터넷과 게임 등을 즐기는 일반 모드와 자녀 학습을 위한 교육 모드로 전환할 수 있는 PC를 내놓았다. 모드의 전환은 물리적인 잠금장치인 열쇠로 이뤄져 부모들은 언제나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 한국 기업들도 이같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경영 전문가 이외에 심리학과 문화인류학 전문가를 활용하는 ‘크로스오버 마케팅’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동행관찰 게임 등 통해 ‘숨은 욕구’ 찾아내

특히 국내 통신 및 전자업체들이 신사업 등을 위해 크로스오버 마케팅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KT는 지난달 새 트렌드 발굴을 위한 고객 그룹인 ‘트렌드 헌터(Trend Hunter)’를 만들었다. 19∼24세 대학생과 30∼34세 직장인 30명으로 이뤄진 회원들은 한 달에 두 번씩 사진을 첨부한 트렌드 보고서를 제출하고, 월 1회 트렌드 토론을 벌인다.

같은 현상에 대해 다른 해석을 끌어내려고 인류학과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을 포함시켰다는 게 KT 측의 설명이다.

KT마케팅연구소는 이와 별도로 500여 명의 고객 집단을 대상으로 가정방문, 동행관찰, 위치추적 등을 이용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말 성장사업부문 아래에 HCI(Human Centered Innovation·인간 중심의 혁신) 그룹이란 조직을 만들었다. HCI 그룹은 ‘고객 그 자체’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사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주된 업무다.

산업디자인과 심리학, 경영경제, 전자공학 전공자들로 이뤄져 있으며 사회학과 문화인류학 전공자를 추가로 모집하고 있다.

HCI 그룹은 게임과 참여관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숨은 욕구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 쇼핑사업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극단적으로 구매를 많이 하거나 적게 하는 소비자를 따라다니며 구매 행위의 ‘숨겨진 비밀’을 찾는다.

○ “한국 기업 상품기획력 미흡”

기업들이 경영학 이외의 다양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서베이 등을 이용하는 정량적 방법론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이철배 LG전자 라이프스타일리서치(LSR) 소장은 “고객이 제품을 써 보게 한 뒤 문제점을 물으면 별다른 대답이 나오지 않지만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이나 냉장고 내부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이용자들의 반응을 살피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앞 다퉈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 기업들이 외국 기업에 비해 고객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한국은 기술력은 좋지만 상품 기획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국대 여준상(경영학) 교수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사람들과 1년 동안 같이 생활하며 하는 ‘쾌감’에 관한 연구나 아프리카 오지 사람들과 살며 행복의 의미를 찾는 인류학적 연구는 기업가들에게 영감을 준다”며 “고객의 잠재 욕구를 분석하기 위한 이런 연구들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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