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일터에서 아날로그 책을 찾는 사람들

  • 입력 2007년 5월 2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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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대명사인 정보기술(IT)과 아날로그 세상의 대표 주자인 책. 안 어울릴 듯한 이 둘의 교집합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동통신회사의 게임 검색 서비스를 총괄하면서 16권의 책을 쓴 소설가, 어릴 때부터 백과사전을 탐독해 온 온라인 사전 태스크포스팀장. 책과 함께 지내며 책을 통해 나름의 디지털 세상을 열어 가는 이들을 만나 보자. 》

■책 16권 펴낸 이통회사 부장

KTF 엔터테인먼트 전경일 씨

소년은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무렵인 1990년에는 실제로 소설을 냈다. 제목은 ‘비행장과 아이들’.

하지만 소설가로 남기는 힘들었다. 꿈도 현실에 맞게 조금씩 바뀌었다.

전경일(43·사진) KTF 엔터테인먼트 부장 얘기다.

그는 휴대전화의 게임 검색 만화 운세 서비스 등을 총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소설가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그러나 그는 소년시절 꿈을 어느 정도 성취했다고 자부한다.

그는 ‘창조의 CEO 세종’ ‘마흔으로 산다는 것’ ‘성공을 위한 자기 경영’ 등의 자기계발 서적과 경영 서적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두 16권의 책을 냈다. 1999년에는 문예 계간지 ‘세계의 문학’에 시로 등단하기까지 했다.

그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책을 낼 수 있는 비결은 ‘부지런함’뿐이라고 했다.

“어렸을 땐 지능지수(IQ)가 150이 넘으면 똑똑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똑똑하다는 것은 멈추지 않고 계속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꾸준한 사람이 똑똑한 거죠.”

삼성전자 과장, 야후코리아 이사를 거쳐 2005년 12월 KTF 부장이 되기까지 그는 회사에서 매일 고민하는 전략과 조직 관련 경영 문제와 자기계발 문제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술을 마신 날에도 집에 와서 30분 정도 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직장생활의 매너리즘도 이러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기가 모여 그가 쓴 책들의 밑바탕이 됐다.

“21세기 조직은 개인이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개인의 역량은 물론 조직의 역량도 키워야 합니다. KTF는 창의적인 조직 문화가 잘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경영 전문가는 아니지만 요즘의 경영 환경이 요구하는 지식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통합의 영역을 담아내는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매일 사전 읽는 포털업체 팀장

다음커뮤니케이션 검색포털본부 정철 씨

다음커뮤니케이션 검색포털본부의 정철(31·사진) 사전 태스크포스(TF)팀장은 ‘사전을 독서하는 남자’로 사내에서 유명하다.

그는 사전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 동화책이나 위인전을 읽는 친구들과 달리 학습대백과사전을 탐독했다고 한다.

“백과사전 중 그림이 많은 부분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모든 지식을 한곳에 모아서 잘 정리해 놓은 사전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과학자가 되려고 서울대 지질학과에 입학했지만 사전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대학 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가수들을 세계에 알리려고 홈페이지 형식의 영문 온라인 사전을 만들었다.

그는 네이버 지식검색팀에서 사전 기획 업무를 4년간 하다가 지난해 ‘다음’으로 옮겼다. 왜 1위 업체에서 2위 업체로 옮겼을까.

“저는 포털 업체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온라인)사전을 잘 만들고 싶어서 포털에 온 것뿐입니다. ‘마음대로 사전을 만들게 해 주겠다’는 다음의 제안이 좋았습니다.”

그의 표정에서 만족감이 묻어났다. 그것은 다음 사전의 실적으로 나타났다. 다음 사전의 월 페이지뷰(PV)가 지난해보다 30만∼40만 건 늘었다. 정 팀장의 야심작인 일본어사전의 PV는 3월부터 경쟁사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한글이나 알파벳으로도 일본어사전을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을 선보이자 학습자들이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명백하게 좋은 사전은 이용자가 가장 먼저 알아봅니다.”

그는 인터넷으로 먹고살지만 책 예찬론자다. 휴일에도 사전학, 언어학 관련 책을 끼고 산다. 그는 “컴퓨터 모니터상의 글은 사람을 급하게 만든다. 호흡이 급해져 찬찬히 읽기가 어렵다. 그러나 책은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책장을 넘긴다. 집중도가 온라인 글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의 궁극적 꿈은 이용자가 직접 꾸미는 ‘위키피디아’ 같은 온라인 백과사전을 만드는 것.

“위키피디아에 담긴 활발한 토론 문화와 ‘내 지식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겸양 의식에 감동하곤 합니다. 이용자들이 축적한 자료가 의미 있는 데이터가 되도록 하는 매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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