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ravel]뉴 인피니티와 태안반도 여행

  • 입력 2007년 4월 19일 0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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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의 북쪽 땅끝인 만대항(이원면 내2리)의 포구. 어선 20여 척이 드나드는 작은 항구에는 양식장도 함께 있는데 한가롭기 이를 데 없는 소박한 풍경이 아름다운 곳. 태안=조성하 여행전문기자
태안반도의 북쪽 땅끝인 만대항(이원면 내2리)의 포구. 어선 20여 척이 드나드는 작은 항구에는 양식장도 함께 있는데 한가롭기 이를 데 없는 소박한 풍경이 아름다운 곳. 태안=조성하 여행전문기자
태안반도의 허다한 해변 가운데서 가장 사랑받는 꽃지 해변. 해변에 조성된 공원의 솟대 조형물 뒤로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보인다. 태안=조성하 여행전문기자
태안반도의 허다한 해변 가운데서 가장 사랑받는 꽃지 해변. 해변에 조성된 공원의 솟대 조형물 뒤로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보인다. 태안=조성하 여행전문기자
내가 자동차를 보는 방식은 좀 독특하다.

하는 일(여행전문기자)이 ‘여행지 취재’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차를 보면 저 차는 어떤 콘셉트의 여행에 좋을까, 아니면 어느 여행지에 어울릴까.뭐 이런 식이다. 어떤 차는 돈오돈수(선승의 깨달음 방식)처럼 단박에 깨친다. 랜드로버의 D3(Discovery) 같은 차다. 백두대간 대관령의 소황병산(가파른 콘크리트 포장 임도)이나 오대산의 상원사길(비포장 숲길)에 기막히게 어울린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뉴 인피니티 G35(V6 3.5L)가 대표적이다. 315마력으로 시속 200km를 가볍게 넘나드는 고성능 세단. 나무늘보처럼 제한속도에 만족하는 내게는 ‘숙제’ 같은 차다. 언뜻 보면 평범한 이 차. 그런데 뜯어보니 달랐다. 선 한 줄, 면 한 개도 허투루 배치되지 않은 고품격이다. 순간 나는 내 취향을 접고 이 차에 빠져 보기로 했다.

오후 11시 서울 세종로 사거리. 광화문 쪽 대로를 여는 푸른 신호등이 켜졌다. 동시에 깊게 밟은 가속페달. G35는 굉음을 울리며 새총의 돌멩이처럼 튀어나갔다. 순간 그 반동으로 몸이 시트로 처박히는 것 같았다. 질주본능. 판에 박힌 이 표현을 이날 나는 뉴 인피니티 G35 세단에서 몸으로 느꼈다.

○ 315마력 고성능… 평범한 외모에 귀족의 품위가

이틀 후. ‘필(feel)’이 왔다. 이 날쌘돌이와 함께 허니문 할 곳이 떠오른 것이다. 서해안의 태안반도(충남)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G35의 고성능을 즐기려 했다면 에버랜드의 스피드웨이가 제격일 터. 태안을 택한 것은 그런 퍼포먼스보다는 이 차가 지닌 내면의 멋 때문이다. 고성능을 지니고도 평범한 듯한 외모로 감춘 그 진중함, 그러면서도 은근히 우러나는 위엄과 권위의 귀족적 품격. 반듯하게 자란 부잣집 아들 같은 점이 태안반도와 무척이나 잘 통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태안이 반도라는 사실.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반도(半島)는 말 그대로 ‘반(半)은 섬’. 섬도 아니요 뭍도 아닌, 다시 풀면 섬과 뭍의 장단점을 두루 갖춤인데 우리나라 자체가 반도이니 반도의 성정은 두루 짐작할 듯싶다. 핵심어만 챙기면 이렇다. 바다에 갇힌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섬에 비해 반도는 대륙과 바다를 오가는 독자행보(獨自行步)의 독특함이 본질. 태안이 여타 서해안 지역과 구별됨은 그 때문이다.

우선 모래해안이 그렇다. 신두리 사구(砂丘)를 비롯해 반도의 서쪽해변은 온통 금빛 모래밭이다. 태안읍의 진산인 백화산에서 발원해 반도 남북을 종주하는 산줄기 지형은 우리 한반도의 축소판이다. 산줄기는 반도를 동서로 가르고 각각의 해안은 모래와 개펄의 상이한 지형을 이룬다. 그리고 그 지형은 일년 열두 달 쉼 없이 나는 다양한 해산물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반도의 특장은 음식. 이탈리아 스페인 베트남 싱가포르 그리고 한국. 이 음식천국의 공통점이 반도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태안반도라고 다를까. 사철 쉼 없이 나는 해산물로 태안은 음식 명소로도 이름났다. 그중 낙지와 꽃게, 우럭은 태안별미의 대표선수다. 박속을 파내 낙지국에 넣고 수제비를 해먹는 박속낙지밀국, 장과 알이 그득한 꽃게를 간장에 담가 숙성시키는 꽃게장, 봄이면 지천으로 나는 우럭을 소금물에 재어 말렸다가 쌀뜨물에 우린 뒤 푹 끓여 두부를 얹어내는 우럭젓국은 태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 한가로운 만대항의 봄… 어민들의 손놀림만 분주하고

드디어 출격의 날. 그날은 식목일(5일)로 날씨가 화창했다. 태안 가는 길은 두 갈래다. 서해안고속도로의 서산 나들목으로 나와 서산을 경유하거나 좀 더 남쪽 홍성 나들목에서 곧장 들어서는 길. 서산 나들목과 태안읍은 30km 거리다. 이날 드라이빙 루트는 태안반도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종주하는 코스로 태안반도의 땅끝 찾기였다.

먼저 북단의 만대항부터 찾았다. 지방도 603호선은 ‘수억말’이라 불리는 땅끝마을 내2리에서 끝났다. 만대항은 좁은 콘크리트 포장도를 따라 동네 안으로 들어선 뒤에야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땅끝은 역시 땅끝. 항구의 방파제에 서니 바다가 320도로 펼쳐진다. 왼쪽은 서해, 정면은 서산과 태안 사이에 놓인 가로림 만이다. 만에 갇힌 바다 건너편에 불길을 내뿜는 거대한 굴뚝. 현대석유화학단지(서산시 대산읍)다. 만대항의 봄날 주중 오전은 한가롭기 이를 데 없다. 주변에는 새로 산 통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옆 양지녘에서는 어민이 그물 손질에 여념이 없다. 물 빠진 항구의 개펄에는 어선 십 수척이 기우뚱 기울어 있고 그 바깥의 양식장에서는 시설물을 손보는 어민들의 발걸음이 부산했다. 횟집도 다섯 집이 있다. 지방도 603호선은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언제 가도 한가롭고 주변에 호젓한 해변이 많아서다. 그중에서도 꾸지나무 골은 특별하다. ‘서해의 동해안’이라고 이름 붙일 정도다. 송림이 우거진 비탈 아래로 펼쳐진 반달 모양의 모래해변에는 늘 파도가 친다.

태안반도의 서편은 해수욕장의 연속이다. 태안읍에서 국도 77호선을 따르다보면 외우기도 어려울 만치 많은 해변의 이정표가 도로가를 장식한다. 옛 추억을 더듬어 몽산포로 갔다. 해변의 송림은 언제 보아도 탐스럽다. 송림 그늘에 백사장. 천국이 따로 없다. 송림 뒤편의 구릉에 최근 허브농원 카밀레 팜이 들어섰다. 농원 안에는 동화 속 풍경의 예쁜 펜션도 있다.

연륙도가 되어 더는 섬이 아닌 안면도.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안면도는 본디 태안반도 남단에 돌출한 곶(串). 그러니까 섬이 아니다. 조선 인조 때 일부를 절단하는 바람에 섬이 된 곳이다. 천수만 잇는 뱃길을 내기 위해서였다.

다리 건너 오른편 바닷가로 큰 동네가 보인다. 백사장항이다. 태안반도에서 최남단의 영목항과 더불어 규모가 큰 해산물 집하장이다.

꽃지 해변은 좀 더 남쪽. 백사장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른다. 롯데오션캐슬 주변에도 펜션이 그득하다. 역시 난개발의 조짐이 보인다. 꽃지 해변도 많이 변했다. 12년 전만 해도 고운 모래더미였는데 지금은 돌무더기다. 할미할아비바위만이 옛 모습 그대로다. ‘꽃지’는 ‘곳지(串地)’의 경화된 발음. 태안 낙조 가운데서도 여기서 보는 낙조가 최고다.

태안반도의 남단은 영목항. 여기서는 산세도 잦아들어 구릉지형을 이룬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닷가로 나지막한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경이 반도의 중간이나 북부와 판이하게 다르다. 크고 작은 여덟 섬을 앞에 둔 항구에는 고깃배가 한가로이 떠돈다.

태안=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맛집▼

○ 카밀레팜

△주소=태안군 남면 몽산리 △찾아가기=서해안고속도로∼서산 해미 홍성 나들목∼태안∼국도77호선(남면방향)∼몽산포해수욕장∼카밀레팜 이정표 △홈페이지=www.kamile.co.kr △전화번호=041-675-3636

○ 박속낙지밀국(삼거리한우식당)

△가격=1인분 1만3000원 △위치=지방도 603호선 원북 삼거리 입구 △전화=041-672-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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