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 퇴직공무원 “연금 절반 세금내면 어떻게 사나”

  • 입력 2007년 3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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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올해 종합부동산세 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권 부총리는 이날 세금 낼 돈이 없으면 살던 집을 내놓으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논란이 예상된다. 과천=연합뉴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올해 종합부동산세 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권 부총리는 이날 세금 낼 돈이 없으면 살던 집을 내놓으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해 논란이 예상된다. 과천=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사는 이모(61) 씨. 중앙부처 공무원 출신인 그는 매달 260만 원(연 3120만 원) 나오는 연금이 유일한 수입이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의 시세는 27억 원 안팎. 기존 아파트가 재건축돼 재미를 봤다. 하지만 그는 올해 보유세로 1년 수입의 반 이상인 1800만 원을 내야 한다. 그는 “집값이 오른 건 맞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평생 걸려 마련한 집 한 채를 보유세 때문에 팔아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큰 폭으로 뛰면서 곳곳에서 세금 부담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올라도 너무 오른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소득층과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금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종부세 대상자들, 특히 중산층은 “내가 왜 부자들이 내는 세금까지 내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 중산층의 경악

종부세에 대한 불만은 특히 한 아파트에서 오래 살았거나 집 한 채만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강하다.

서울 양천구 목동 10단지 38평형에 사는 김모(56·여) 씨는 “작년에는 재산세만 140만 원 냈는데 올해는 종부세까지 400만 원 정도 내야 한다니 기가 막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12년 동안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산 죄밖에 없는데 남편 연봉 6000만 원으로 세금 내고 아이들 학원비 주면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다.

인근 H공인 사장은 “양도소득세 때문에 집을 못 파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보유세마저 가파르게 오르자 사겠다는 사람도 없다”며 “‘현 정권에 양도세 갖다 바치기 싫어서라도 집 안 팔고 버티겠다’는 주민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목동에서는 14일 공시가격이 발표되자 매매계약을 취소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시가격이 급등한 서울 강남구도 마찬가지. 개포동 미래공인 정준수 사장은 “작년에는 개포 주공 16평형도 일부만 종부세 대상이었지만 올해는 15평형까지 종부세를 내게 됐다”며 “개포 주공 1단지 전체에서 종부세 대상이 80%나 돼 반발이 심하다”고 전했다.

종부세 대상이 아닌 아파트 거주자도 재산세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 보정동 최모(49) 씨는 “지난해 재산세로 30만 원가량 냈는데 올해 또 오른다니 무서워서 알아볼 엄두도 못 냈다”며 “대학생 아들 학비 대고 살림하고 나면 30만 원도 부담된다”고 말했다.

○ 조세저항 움직임

보유세 급등에 반대하는 조직적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의 한 주민은 “지난달 국세청에 종부세 이의신청을 냈다”며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와 대구, 부산 등 각지에서 2500명가량이 이의신청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삼동 대우푸르지오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에 종부세 위헌소송을 위한 법률상담 광고도 나붙어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해 말 종부세 철회를 위한 주민 동의서까지 걷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행동은 없지만 올해는 세금이 워낙 많이 느는 만큼 주민들이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공인 김태언 사장은 “우성·무지개 아파트 주민들이 종부세 위헌소송을 위한 동의서를 걷었을 때는 주로 40, 50평형대 보유자들이 주축이 됐지만 올해는 30평형대 거주자들까지 문의해 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물론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종부세가 부담되면 이사를 하면 될 일이지 굳이 고가(高價)아파트를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양천구 목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값 오를 때는 가만히 있다가 세금 낼 때 되면 반발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지자체도 부담

징세(徵稅) 기관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납세자들을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강남구청 정종학 세무1과장은 “종부세를 지자체가 걷는 것으로 오해해 항의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에만 강남구민이 낸 종부세가 3000억 원가량인데 중앙정부가 강남구에 교부금으로 돌려준 돈은 2005년과 2006년을 합해 94억 원에 불과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국세청도 올해는 어느 때보다 종부세에 대한 반발이 심할 것으로 보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 중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작년 수준의 징수율을 거두려면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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