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 부동산대출 시장 먹는다

  • 입력 2007년 3월 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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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부업계 ‘큰손’이 일본이라고요? 사실은 미국계예요. 요즘 부동산 대출 규제를 틈타 국내 금융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어요.”

최근 대출 규제로 부동산 대출업무가 사실상 중단된 한 시중은행 임원은 최근 본보 기자에게 이같이 귀띔했다.

메릴린치 등 세계적 투자은행들이 국내에 자회사를 세우고 부동산담보대출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메릴린치가 대주주인 ‘페닌슐라캐피탈’, 리먼브러더스의 ‘코리아센트럴모기지’, 씨티그룹의 ‘한국씨티그룹캐피탈’,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 계열의 ‘한국PF금융’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해 7월 국내 영업을 시작한 페닌슐라캐피탈은 반년도 안 된 작년 말 현재 자산이 4억5000만 달러(약 4240억 원) 규모로 불어났다.

이 회사는 본사 직원 40명, 대출 모집인 90명을 두고 영업하고 있으며, ‘우량 물건’인 서울 지역 아파트 담보 1순위 대출만 취급하고 있다.

○ “까다로운 국내 대출환경이 오히려 기회”

외국계 대부업체들은 최근 국내 금융회사의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된 틈을 이용해 대출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이들은 담보인정비율(LTV)을 최대 80%까지 인정하면서 대출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대부업과 할부금융업으로 등록했지만 실제로는 부동산담보대출을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규제의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대출금리도 매력적이다.

페닌슐라캐피탈은 현재 평균 주택담보대출금리를 연 8.6%로 밝히고 있다. 또 이 회사의 최저 금리는 연 6%대 후반으로 시중은행과 별반 차이가 없다. 상호저축은행과 캐피탈업체 등 국내 2금융권의 평균 금리는 연 10%대 이상이다.

대부업체는 ‘금융회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금융감독원의 지도 감독 대상이 아니다. 이들 업체의 등록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대부업체 수가 너무 많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메릴린치와 스탠다드차타드 등 세계적 기업이 ‘고리대금업’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체면 구기고 대부업계에 진출한 이유다.

○ ‘양지’로 나온 외국계 대부업체들

그동안 국내 언론의 취재 요청을 거부해 왔던 페닌슐라캐피탈은 이달 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키스 샤켓 사장이 직접 그간의 실적과 상품 내용을 설명할 예정이다.

국내 시장에서 당당히 ‘양지’로 나와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이들의 경쟁 상대는 국내 시중은행이다.

그동안 외국계 대부업체 감독에 손을 놓고 있던 금감원도 다급해졌다.

조성목 금감원 서민금융지원팀장은 “현재 외국계 대부업체 영업현황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며 “문제점이 드러나면 법령 개정 등 대처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법령 개정에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외국계 대부업체들이 ‘세력’을 확장할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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