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검이 16일 현대자동차 노조 이헌구 전 위원장의 금품수수 사실을 밝혀낸 데에는 지난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단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해 4월 대검 중수부는 1300여억 원의 비자금 조성 혐의로 정몽구(69) 회장을 구속한 뒤 비자금 용처 수사에 나섰다.
회사 관계자들은 조사 과정에서 “파업을 조기에 타결하기 위해 매년 파업 때마다 노조원들에 대한 격려비, 회식비 등 외에 노조 간부 등에겐 별도로 ‘당근’을 제공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같은 진술을 토대로 광범위하게 자금 추적을 해 왔고, 현대차 노조는 물론 기아차 노조의 전직 간부가 회사 측에서 거액을 받은 혐의를 포착했다.
울산지검은 이와 별도로 지난해부터 이 씨의 계좌를 추적해 거액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으나 어떤 성격의 돈인지를 확인하지 못한 채 내사가 중단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대검 중수부에서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첩보를 울산지검에 넘겨줬고, 이 씨가 회사 측에서 2억 원을 받은 혐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검 중수부는 울산지검 외에 또 다른 일선 검찰청에 기아차 노조 간부가 회사 측에서 거액을 받았다는 첩보를 넘겨 현재 내사가 진행 중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2억 받은 혐의 이헌구 씨는
91년 ‘5개월 위원장’… 2001년 재당선
현대차 노조 간부들의 취업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가 한창일 때인 2005년 4월 울산시청 프레스센터.
당시 이헌구(사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은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을 하면서 “결백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이 씨가 현대차 노조위원장으로 재직할 때 취업비리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데다 이 씨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에서 수억 원의 뭉칫돈이 발견돼 회사 측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씨의 해명은 검찰의 수사로 1년 10개월 만에 거짓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씨는 그동안 현대차 노조는 물론 노동계에서 신망이 두텁던 인물이다. 1986년 12월 현대차에 입사한 이 씨는 1991년 9월 3대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성과급 투쟁을 벌이다 검찰에 구속돼 5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2001년 10월 10대 노조위원장에 다시 당선된 이 씨는 같은 해 11월 29일부터 20일간 파업을 주도했다. 2002년에는 임금협상과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해 13일간 파업을 벌였으며, 2003년에는 임·단협 과정에서 6월 25일부터 8월 5일까지 25일간 각각 파업을 벌였다. 이 시기에 이 씨는 회사 측에서 ‘파업 조기 해결’ 부탁과 함께 2억 원을 받았다.
노조위원장을 그만둔 2004년 1월부터 2005년 10월까지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을 맡아 연대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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