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재무제표 존폐’ 다시 도마에

  • 입력 2006년 12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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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2조 원이 넘는 A그룹의 재무팀은 매년 봄만 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각 계열사의 재무제표가 완성되는 2월 말부터 결합재무제표 작성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그룹은 계열사만 20개가 넘는 데다 평소에 공시를 하지 않는 비상장 계열사가 많아 자료 취합과 수치 확인에만 석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룹 재무팀 관계자는 “마지막 몇 주간은 밤을 새우는 날도 많다”며 “이렇게 신경을 쓸 만큼 결합재무제표가 실효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자산 2조 원 이상 대기업 집단이 의무적으로 작성하고 있는 결합재무제표에 대한 존폐(存廢) 논란이 뜨겁다.

○ 한국에만 있는 제도

결합재무제표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집단의 차입경영 행태를 개선하고,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1999 회계연도부터 작성해 왔다.

문제는 선진국들이 두루 쓰고 있는 연결재무제표와 달리 결합재무제표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작성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기업들은 “결합재무제표는 유례가 없는 악성 기업 규제”라며 “연결재무제표만 있어도 투명성 확보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고려대 이만우(경영학) 교수는 “어떤 금융회사도, 학자도 결합재무제표를 활용하지 않고 있다”며 “하루빨리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2009년 국제회계기준 도입

금융감독당국도 결합재무제표를 폐지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실무적으로는 폐지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면서 “재정경제부에서도 결합재무제표 폐지 문제를 논의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금감원은 이 문제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되는 사안인 만큼 공식적인 방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만약 폐지한다면 국제회계기준이 한국에 단계적으로 도입되는 2009년이 적당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제회계기준은 상장사들이 결합재무제표가 아닌 연결재무제표를 주 재무제표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가 “결합재무제표를 폐지하면 재벌들의 내부거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어 폐지 여부나 시기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 결합재무제표는 :

그룹 총수가 지배하고 있는 모든 계열사를 하나의 기업으로 보고 작성하는 재무제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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