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맡겼다간 쪽박 찹니다…증권사 일임매매 주의보

  • 입력 2006년 11월 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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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임대업을 하는 강지환(가명·43) 씨는 지난해 12월 D증권사의 선물옵션계좌에 1억 원을 입금했다.

잘 아는 증권사 직원이 “옵션은 월 1∼2%의 수익이 가능한 데다 원금 손실 위험이 적어 안정적”이라면서 매매를 맡기는 일임(一任)계약을 권유한 때문이다.

이 돈은 상승장에서 수익이 나는 콜옵션에 ‘몰빵(집중)’ 투자됐다. 하지만 연초부터 이어진 하락장세로 강 씨 계좌의 잔액은 6월 9일 기준으로 달랑 11만7751원만 남았다.

큰 손해를 본 강 씨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냈고, 지난달 초 금감원은 “증권사는 강 씨에게 6776만 원을 보상하라”는 내용의 조정결정서를 냈다. 본인 책임과 함께 옵션시장의 투자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증권사 측의 책임을 상당 부분 인정한 것이다.

이처럼 증권사에 무턱대고 투자금을 맡겼다가 손해를 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3일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9월 증권분쟁조정신청은 48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증가했다. 특히 일임매매 분쟁은 126건으로 72%나 늘었다.

증권 관련 분쟁은 올해 들어 증시가 부진한 가운데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손실이 눈 덩이처럼 늘면서 급증하는 양상이다.

문제는 개인투자자들이 증권당국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더라도 대부분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손실액의 절반 이상을 보상받은 강 씨는 특별한 사례다.

회사원 서인수(가명·39) 씨 분쟁조정 신청 사례를 보자. 서 씨는 지난해 11월 적립식펀드에 가입하려고 증권사를 찾았다가 직접투자를 권유하는 직원의 설득에 넘어가 1200만 원을 일임매매로 맡겼다.

2개월 후 이 직원은 “정보기술(IT)주로 갈아타기 위해 보유 종목을 모두 팔겠다”고 알려 왔다. 하지만 새로 산 IT주가 급락하면서 순식간에 850만 원이 날아갔다. 서 씨는 거래소에 분쟁조정을 신청했지만 한 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이기재 거래소 분쟁조정실장은 “증권사가 매매 전에 거래내용을 알렸기 때문에 주식매매 손실의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증권분쟁 처리 기준이 모호해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증권분쟁 처리는 금감원과 증권선물거래소, 증권업협회가 나누어 맡고 있다. 그런데 거래소 측이 “증권거래법에 근거해 판정을 내린다”고 한 반면 금감원 측은 “법적 기준은 없고 (금감원) 내부 지침만 있다”고 할 정도로 기준이 뒤죽박죽이라는 것.

한 분쟁조정 실무자는 “주로 경험에 근거해 분쟁을 조정하기 때문에 비슷한 사안이라도 조정 결과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털어놨다.

장범식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은 증권업협회(NASD)의 자율규제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법적 규제 사이에 구분이 분명해 업무 혼선이 거의 없다”며 “한국도 증권 관련 분쟁조정의 처리 기준을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증권분쟁 유형별 접수 건수 추이
유형2005년 1∼9월2006년 1∼9월
부적절한 일임 또는 임의 매매127207
고객보호의무 무시한 매매권유51103
기타(펀드 관련, 전산 또는 주문처리 오류 등)151175
합계329485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접수 기준. 자료: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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