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쇼핑-교육의 ‘블랙홀’ 서울 소비특별市

  • 입력 2006년 10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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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정모(43) 씨는 토요일인 28일 오전 일을 마치고 아내, 중학생 딸과 함께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발레단의 ‘카르멘’을 관람한 정 씨 가족은 강남역 근처 한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도심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오전 정 씨가 딸과 함께 경복궁을 거니는 동안 아내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오후 4시 서울역에서 만난 정 씨 가족은 KTX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갔다.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을 찾는 정 씨 가족의 이틀간 나들이 비용은 보통 100만 원을 넘어선다.》

의료 교육 유통 문화 등 ‘고급 소비’의 서울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국가 균형발전’을 꾀한다며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를 세우고 있지만 국민의 소비행태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 “잘한다” 소문나면 지방 환자 몰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S성형외과는 올봄 5개였던 입원실을 20개로 늘렸다. 지방에서 올라와 수술을 받는 고객들이 치료가 끝날 때까지 머물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이 병원의 지방 환자 비중은 2, 3년 사이 20%에서 40% 정도로 늘었다.

이 병원 이모 원장은 “인터넷을 통해 ‘잘한다’는 소식이 돌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환자들이 찾아온다”며 “지방 환자를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오피스텔을 임대하는 병원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외래 환자 중 수도권 외의 지방 환자 비중이 2002년 21.4%에서 지난해 27.0%로 높아졌다.

백승운 삼성서울병원 외래부장은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서울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서 “암 같은 중병에 걸린 환자는 대부분 서울로 온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백화점-학원 수요 꾸준히 늘어

롯데백화점이 최근 고객의 정보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1∼6월) 서울 중구 소공동 본점을 방문한 지방 고객의 비중은 9%였다. 이는 2년 전인 2004년 1∼6월의 6.7%보다 2.3%포인트 증가한 것.

롯데백화점 홍보팀의 임형욱 과장은 “지방 고객들의 비중이 계속 늘 뿐 아니라 지방 고객 1명이 쓰는 금액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입시학원인 대성학원은 다음 달 16일 수능 이후 몰려올 지방 학생들에 대비해 논술시험 준비반을 개설할 계획이다.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이사는 “지방에서는 체계적인 논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1500명 정도의 논술강의 수강생 중 지방 학생은 3, 4년 전보다 갑절로 늘어난 300∼400명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방 학생 1명이 논술강의를 듣기 위해 한 달 남짓 서울에 머무는 동안 쓰는 돈은 사설 기숙사 비용 90만 원, 학원비 50만 원 등 평균 200만 원 정도다.

○ KTX 고속도로 확충이 체감 거리 줄여

이처럼 고급 소비가 서울로 집중되는 원인은 지방 거주자들의 높아진 소비 수준을 현지의 ‘소비 인프라’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KTX, 천안 지역까지 연장된 수도권 전철, 영동고속도로 확충 등 교통망이 대폭 개선돼 서울과 지방의 ‘체감 거리’가 대폭 줄어든 것도 한몫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균형발전 전략’도 이런 상황을 바꾸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혁신도시로 이전할 예정인 한 공공기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은밀하게’ 마케팅 조사를 벌였던 A건설업체는 이 지역에 30평형대 이상 아파트는 짓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

이 건설업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조사 대상자는 가족은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갈 계획이었다”며 “주택 구입을 포함해 소비의 중심을 지방으로 옮기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동시다발적인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지방 개발 방식으로 서울의 집중 현상을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제대로 된 한두 지역에 역량을 집중해 지방에서도 만족스러운 경제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성공 사례를 보여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삼성서울병원 외래 환자의 지역별 분포 추이 (단위: 명, %)

2002년2003년2004년2005년
수도권8만8382(78.6)9만5275(77.5)9만4096(76.2)8만5796(73.0)
비수도권2만3993(21.4)2만7690(22.5)2만9399(23.8)3만1768(27.0)
전체11만237512만296512만349511만7564
괄호 안은 전체 환자 대비 비중. 자료: 삼성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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