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브랜드]정유업계 ‘4色大戰’

  • 입력 2006년 9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차를 타고 아무리 달려도 주유소를 찾기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다 주유소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만 가득할 뿐. 운전자는 그 주유소가 어느 회사 소속인지 관심이 없었다. “기름은 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들여오는 건데, 그걸 유공에서 팔건 호남정유에서 팔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게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기름때 묻은 옷을 입은 주유소 아저씨가 불친절하게 대해도 그러려니 했다. 어느 주유소에서도 서비스 정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름 품질도 엇비슷했다. 세월은 흘렀고 시대는 바뀌었다. 언제부터인가 주유소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자신만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4색 대전’으로 불리는 4개 정유회사의 정면승부. 자신만의 브랜드로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브랜드 대전’의 열기가 뜨겁다.》

주유소가 ‘기름 넣는 곳’에서 ‘브랜드 대전’의 전진 기지로 탈바꿈한 계기는 수요와 공급의 변화였다.

1964∼1980년 정유공장의 정제 능력은 약 18배 늘어난 반면 석유 소비량은 무려 25배나 증가했다. 공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었는데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1970년대에 두 차례 오일 쇼크가 일어나면서 기름을 사재기하려는 투기 수요까지 가세했다.

정유회사들은 느긋할 수밖에 없었다. “기름 넣고 싶으면 자기들이 와서 돈 내고 넣으면 되지, 우리가 마케팅을 왜 하나” 식의 ‘배짱 장사’가 가능했다.

1980년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경제발전 속도가 둔화되면서 석유 소비의 증가 속도가 점차 떨어졌다. 1980∼1994년 석유 소비량이 3.4배 증가하는 동안 생산능력은 2.6배 늘어나 양쪽이 균형을 잡아갔다.

1995년 에쓰-오일의 전신인 쌍용정유가 불을 붙인 옥탄가 논쟁은 소비자들에게 ‘기름에도 품질이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옥탄가가 높은 고품질 휘발유를 쌍용정유가 싼 가격에 내놓자 소비자들은 옥탄가에 낯설어 하면서도 “더 좋은 기름이 있다더라”며 주유소를 골라 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정유회사들은 서서히 브랜드에 눈을 떴다. 운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정유회사는 기름에 이름을 붙여나갔다. ‘하이플로 골드’, ‘슈퍼림디럭스 골드’, ‘드래곤CG’ 등의 이름을 붙인 기름이 선을 보인 것도 이 무렵이다.

1994년 현대오일뱅크(당시 현대정유)가 국내 정유업계 최초로 주유소 브랜드 ‘오일뱅크’를 출범시켰다. 1995년에는 SK㈜(당시 유공)와 GS칼텍스정유(당시 호남정유)가 그 유명한 ‘엔크린’과 ‘테크론’을 앞세워 휘발유 브랜드 시대를 열었다. 후발주자인 쌍용정유는 2000년 에쓰-오일로 다시 출범하면서 가격인하 경쟁을 주도해 브랜드를 알려나갔다.

정유회사별로 색깔도 분명해졌다. ‘이동하는 위험물’을 상징하기 위해 빨간색으로 단일화됐던 유조차 기름 탱크가 회녹색(GS칼텍스), 붉은색(SK㈜), 노란색(오일뱅크), 파란색(오일뱅크)으로 다양해졌다. 각자의 브랜드를 상징하는 컬러를 구축한 것이다.

이른바 ‘4색 브랜드 대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GS칼텍스…이름 바꾼 GS그룹 대표▼

GS칼텍스의 브랜드는 단순히 이 회사만의 것이 아니다. 지난해 GS그룹이 LG그룹으로부터 분리되면서 GS칼텍스는 그룹 전체의 대표 브랜드라는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됐다.

GS칼텍스는 지주회사인 GS홀딩스 전체 매출의 84%를 차지한다. GS칼텍스가 브랜드 파워를 얼마나 키우느냐에 따라 새 출발을 한 GS그룹 전체의 이미지가 결정되는 구조다.

실제로 GS칼텍스는 지난해 3월 사명을 바꾼 이후 개별 제품 브랜드보다 기업 브랜드 자체를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전국 3400여 개의 주유소와 충전소, 5500여 대의 탱크트럭 등이 브랜드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맡았다. 이런 전략에 힘입어 GS칼텍스는 출범 1년 만에 소비자 100명 가운데 97명이 “바뀐 회사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답할 정도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SK㈜…행복날개 달고 비상▼

SK㈜가 오랫동안 정유업계 정상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로는 단연 브랜드의 힘이 꼽힌다. SK㈜는 1995년 대표적인 휘발유 브랜드 엔크린을 선보였고, 윤활유 시장에서도 ‘ZIC’를 앞세워 브랜드 파워를 확장했다. ‘빨간 모자 아가씨’로 대변되는 강렬한 빨간색 마케팅은 SK㈜가 국내 대표 정유 브랜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일찌감치 브랜드에 눈을 뜬 기업 전략 덕에 SK㈜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서 발표하는 ‘한국 산업의 브랜드 파워’ 휘발유 분야에서 올해까지 8년 연속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부터 SK㈜는 ‘행복 날개’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담은 로고를 선보였다. 세계로의 비상(飛上), 따뜻함, 행복감 등을 의미하는 ‘행복날개’ 로고가 SK주유소 곳곳에 부착되면서 SK㈜의 통일된 브랜드 파워가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쓰-오일…좋은 기름이니까▼

2000년 지금의 사명을 쓰기 시작한 에쓰-오일은 출범 직후 브랜드 파워가 약해지면서 다소 고전했다. 경쟁 회사의 엄청난 마케팅 공세 때문이었다.

전문 정유회사인 에쓰-오일이 가장 앞세울 수 있는 것은 제품의 품질. 이 회사는 약화된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해 지난해부터 ‘좋은 품질’을 바탕으로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특히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쉬운 광고 음악 ‘에쓰∼오일, 에쓰∼오일, 에쓰∼오일, 좋은 기름이니까’가 크게 히트하면서 회사의 브랜드 파워도 급등했다. ‘좋은 기름’이라는 이미지 덕에 올해 상반기 시장점유율도 지난해보다 0.5%포인트 올랐다. 또 ‘주유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를 나타내는 ‘브랜드 인지율’도 지난해 9%에서 올해 15.1%로 크게 높아졌다.

▼현대오일뱅크는…‘도전하는 즐거움’ 전략▼

현대오일뱅크는 정유업계 최초로 1994년 ‘오일뱅크’라는 주유소 브랜드를 도입할 정도로 브랜드의 가치에 일찍 눈을 뜬 회사다.

이 회사는 2004년 전문가들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결과를 토대로 ‘도전하는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들고 나왔다. ‘틀을 깨는 도전을 통해 소비자에게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는 회사’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심겠다는 것이다.

새 전략의 첫 번째 시도로 2004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고급 휘발유 전용 ‘카젠 주유소’를 열었다. 이 주유소는 호텔 수준의 서비스와 최고의 품질을 제공해 주유소계의 명품으로 떠올랐다. 또 2004년에는 매연과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인 새로운 디젤 ‘퓨렉스’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젊고 혁신적인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확산시켰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