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줄값 情 한말 받았죠” 삼성重직원들 노인 한글지도 봉사

  • 입력 2006년 5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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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직원들이 인근 지역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글 공부방을 운영하며 정을 나누고 있다. 경남 거제시 거제면 외간리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글을 익히는 모습. 사진 제공 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인근 지역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글 공부방을 운영하며 정을 나누고 있다. 경남 거제시 거제면 외간리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글을 익히는 모습. 사진 제공 삼성중공업
“아이고, 북망산천에 갈 날 받아 놓고 글은 배워서 뭐할라꼬(뭐하려고)….”

“할머니, 글씨 계속 쓰시면 팔에 힘도 생기고 치매 예방에도 좋아요, 자, 다시 한번.”

경남 거제시 거제면 외간리 마을회관에서는 저녁마다 가끔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과 삼성중공업 직원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 ‘금싸라기 장학회’ 회원들 사이에서다.

할머니들은 막상 지원은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탓에 종종 가벼운 투정을 부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회원들은 할머니들을 다독인다.

올해 3월 문을 연 한글 공부방에 참여한 할머니는 모두 12명. 7개월 과정인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진행된다.

회원들이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중고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이 장학회는 마을을 돌며 책을 나눠 주다가 한 할머니에게서 “까막눈한테 책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을 듣고 공부방을 열었다.

○“자식에 편지 쓰려고 지원”

첫 공부방이 열린 한내마을에서는 8명이, 이듬해 연중마을에서는 9명의 할머니가 한글을 익혔다. 지원 동기는 자식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할머니들은 책 읽을 순서가 되면 “내(나)는 몬한다(못한다)”고 쑥스러워하면서도 “할 수 있다”는 한마디에 이내 목청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세상을 뜨는 지인(知人)의 소식에 기운이 빠질 때도 있다.

최순자(84) 할머니는 “이 나이에 배워서 뭐 하겠노. 자꾸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뿐데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봉사회 회장인 양경숙(42·여) 삼성중공업 대리는 “콩나물도 계속 물을 주면 쑥쑥 자라지 않느냐”며 “꾸준히 하시면 된다”고 격려한다.

할머니들이 쓴 편지는 손수 지은 농산물 보따리에 함께 실려 도시로 향했다.

‘아들아, 며늘아. 고추, 마늘 농사 지어서 보낸다. 늘 건강하거라.’

○부모가 글 깨친 것처럼 기뻐

양 대리는 “국수를 삶아 주시고 간식을 마련해 주시는 등 하나라도 더 챙겨 주시려는 할머니들을 보면 글을 배우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며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 생각만큼 쉽지 않은데 할머니들이 한 자 한 자 익히실 때마다 즐겁다”고 말했다.

성경철(41) 차장도 장모님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린 경험을 십분 살리고 있다.

특히 부인 곽홍주(36) 씨와 아들 찬국(11) 군, 딸 찬희(9) 양까지 참여하고 있다.

다섯 살 때부터 할머니들과 함께한 찬희 양은 큰소리로 단어를 읽어 드리는 등 어엿한 ‘꼬마 선생님’이 됐다.

성 차장은 “아이들이 할머니들과 만나면서 의젓해진 데다 할머니들이 정을 듬뿍 주셔서 드린 것보다 더 많이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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