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1>이건표 교수의 ‘삶을 바꾼 디자인’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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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노 올리베티
아드리아노 올리베티
《미국의 저명 디자이너이자 교육자였던 제이 더블린은 “제품은 냉동된 정보”라고 말했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만든 제품들은 기능성 도구라기보다 당대의 사회 문화 기술적 가치를 담은 정보의 전달체라는 것이다. 박물관 유물에서 선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디자이너는 삶의 정보를 밝혀내 제품으로 ‘얼리고’, 소비자는 제품을 사용하면서 그 정보를 ‘녹여 낸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일상의 삶도 변한다. 디자인이 곧 인간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이건표 카이스트 산업디자인과 교수가 시리즈 ‘삶을 바꾼 디자인’을 통해 인간과 디자인의 상호작용을 소개한다.》

이탈리아 디자인이라고 하면, 밀라노의 화려한 패션쇼나 유명가구 회사의 쇼룸을 떠올리기 쉽다. 많은 이들이 ‘예술’로 찬미하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정체성은 르네상스 이후 수세기동안 이어져 온 가족 중심의 장인 정신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과 일정 거리를 두면서 대량생산제품 디자인의 미적 혁신을 주도하며 사무실의 경관을 일신한 곳이 있다. 유럽 최대의 사무기기 업체인 올리베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08년에 카밀로 올리베티가 창립한 이 회사는 타이프라이터 제조업체로 출발했다. 1943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장에 취임한 아드리아노는 타이프라이터의 미래가 밝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컴퓨터를 비롯한 사무자동화 제품에 주목했다. 그는 1950년대 후반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전자계산기, 전자타이프라이터를 양산하면서 독창적인 플라스틱 미학을 정립해 갔다.

플라스틱이 외장재로 상용화된 것은 1930년대다. 그러나 이때의 플라스틱은 아르데코 등 기존 스타일을 베끼거나, 목재 금속과 같은 기존 재료의 질감을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1950년대 타퍼웨어로 불리는 부엌용품들이 단순한 형태와 파스텔 색채 덕분에 주부들의 인기를 끌면서, 플라스틱의 재료적 속성을 미적으로 구현하려는 디자인 실험들이 다채롭게 시도됐다. 올리베티는 독일의 브라운과 함께 그 실험을 주도한 회사다.

브라운이 면도기에서 오디오까지 가정용품 부문에서 기능주의 노선을 취하며 금욕적 형태의 디자인을 만들어 낸 데 비해 올리베티는 사무기기 분야에서 기하학적 형태의 디자인을 토대로 유희적 요소를 덧붙인다.

브라운이 플라스틱의 미학에 과학의 이름을 부여한 반면, 올리베티는 예술의 향취를 가미한 것이다. 이 차이는 디자인 조직 문화로 이어졌다. 브라운이 디터 람스 등 인하우스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한 데 비해 올리베티는 내부 디자인 부서를 두되 마리오 벨리니, 에토레 소트사스, 미켈레 데 루치 등 개성이 강한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영입해 제품을 개발했다.

올리베티 미학의 핵심은 ‘플라스틱의 건축술’로 요약될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사무기기는 내부 기계 장치를 감추기 위해 덩치 큰 박스의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올리베티는 기본적으로 탈(脫)박스 형태의 디자인을 견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클리드의 공리를 벗어나는 무리수를 두진 않았다. 언제나 비례의 원리를 강조하면서 정교하게 기하학적 표면들로 건축적 매스를 조합해냈다. 그리고 그 표면 위에 세련된 배색과 유희적 디테일을 서명처럼 남겼다.

이런 접근법은 제품이 어우러지는 사무 공간에 주목한 결과였다. 온갖 사무자동화 기계들에 의해 점거당할 운명에 처한 사무실을 화이트칼라의 삶이 영위되는 일상의 환경으로 변모시키겠다는 ‘철학’. 이를 위해 올리베티는 사무기기들에 ‘소형 건축물’의 자격을 부여하고 그 공간 질서를 구획하고 시각적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런 접근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건축 교육을 받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올리베티가 독특한 디자인 미학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올리베티는 1930년대부터 디자인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시기 올리베티가 주목한 분야는 그래픽 디자인에 토대를 둔 기업이미지통합 프로그램(CIP)이었다. 조반니 핀토리가 디자인한 산세리프 소문자 로고타입과 광고 이미지들은 매우 현대적이어서, 당시 IBM의 토머스 잡슨 주니어 회장이 다음과 같이 말했을 정도였다.

“올리베티의 광고와 카탈로그는 다채로운 색채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모든 것이 멋진 그림 퍼즐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그에 비하면 IBM의 홍보물은 마치 소다수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안내 책자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는 직접 이탈리아로 가서 아드리아노로부터 디자인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올리베티가 없었다면 “굿 디자인은 굿 비즈니스”라는 잡슨 주니어의 명제와 폴 랜드의 IBM 줄무늬 로고는 나오지 않았을 듯하다.

올리베티의 영향력은 IBM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애플의 컴퓨터 디자인에서도 올리베티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리베티 제품이 보여주는 유희적이면서도 절제된 디테일의 요소들은 애플의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디자인 어휘 중 하나였다. 아이팟의 클릭휠은 마리오 벨리니가 노란색 고무로 피부처럼 디자인한 디비숨마(Divisumma) 18의 버튼에 오마주(hommage)를 바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1959년에 ELEA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디자인을 맡기 전까지 무명이나 다름없던 에토레 소트사스는 올리베티와의 협력을 발판으로, 젊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멤피스 그룹을 결성하고 포스트모던 디자인 트렌드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올리베티는 새로운 디자인의 가치를 창출하는 조형 실험실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건표 교수 kple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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