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黃 대담]한국 먹여살릴 ‘BT-IT 비빔밥’ 만들자

  •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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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는 과학기술 육성을 통한 현대판 세종의 시대를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대 기자
황우석 교수는 과학기술 육성을 통한 현대판 세종의 시대를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대 기자
“황씨 가문에 귀인(貴人)이 나셨습니다.”(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별말씀을요. 귀인은 교수님이시지요.”(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22일 황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서울대 관악캠퍼스 수의대. 생명공학기술(BT)과 정보기술(IT)계의 세계적 거장(巨匠)은 같은 황씨 성(姓)을 의식한 듯 가문 얘기로 인사를 대신했다.

“본(本)도 같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두 사람은 “본은 다르지만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차피 한 조상”이라며 끈끈한 ‘친족 의식’을 과시했다.

▽황우석 교수=추석은 어떻게 보냈습니까.

▽황창규 사장=사람들 독려하고 평범하게 차례 지내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어떻게 보냈나요.

▽황 교수=부끄럽게도 평소처럼 그냥 나와서 정상 근무했습니다.(웃음) 얼마 전 황 사장께서 발표하신 16Gb(기가비트) 낸드 플래시메모리는 ‘장외 홈런’감입디다.

▽황 사장=과찬입니다. 미래 산업의 특징은 IT와 BT, 나노기술(NT) 등이 융·복합화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각각의 시장이 따로 존재할 때보다 어마어마하게 규모가 커집니다. 플래시메모리는 융·복합화의 핵심이 되는 반도체지요. 이제 칩 하나가 움직이는 도서관인 세상이 됐습니다.

▽황 교수=분야는 다르지만 황 사장이 펼쳐 나가는 도도한 진보를 볼 때 덩달아 힘이 생깁니다.

▽황 사장=반도체 분야에서 13년째 1위를 지키고 있는데 최정상은 너무 어려워요. 해답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이는 신밖에 없습니다. 황 교수는 BT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한 하늘 아래 같이 숨쉬면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현재의 기술(IT)과 미래의 기술(BT)로 서로 자극을 주고 있는 셈이죠.

황 사장의 좌우명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 곳곳에는 그의 좌우명이 붙어있다.

황 교수 연구팀의 모토는 ‘계란으로 바위를 깨자. 하늘을 감동시키자’이다.

‘최선을 다하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진다’는 믿음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황 교수=아직 우리 연구실은 학문적인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하나는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것을 해 보자, 감히 남이 넘볼 수 없는 위치를 굳히고 만들자는 일념을 갖고 있어요. 작년부터 내놓은 세 편의 논문이 모두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커버스토리로 실렸습니다. 질병의 종류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환자에게 맞는 맞춤형 줄기세포를 거의 자유자재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됐죠. 세계 어딜 가도 확실히 인정해 주는 수준이 됐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황 사장=IT와 BT의 융·복합화가 앞으로 화두가 아닐까요. 황 교수가 연구하는 줄기세포가 범위를 넓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상용화된 DNA 칩에서는 IT가 BT를 이끕니다. BT와 IT가 결합하면 DNA 칩처럼 병의 원인을 정확하고 정형화된 방법으로 진단할 수 있겠지요. 기술 발전과 융합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요. 32GB(기가바이트) 플래시메모리 카드에 카메라를 달아 갖고 다니면 1주일치의 모든 기억을 디지털 영상으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인간은 창조적인 일에만 전념할 수 있어요. 이런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어요.

▽황 교수=한국은 IT와 BT가 융합한 신경제 모델을 창출할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의 BT는 이제 막 태동하는, 분만 직전의 아기 같아요. 반면 IT는 이미 실용화 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죠. 황 사장이 16Gb가 아닌 테라급 메모리를 개발하면 이를 초소형 카메라에 달아 몸에 주입해 세포 단위의 변화를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어요. 그 결과를 병원에 실시간으로 전송해 문제가 발견되면 원격조종으로 치료할 수도 있겠죠.

▽황 사장=일반인이 알기 쉬운 얘기로 하면 IT는 예측 가능한 것이고 싸게 만드는 실용기술인 셈이죠. BT는 예언적이고 신비로운 것인데 여기에 IT가 결합하면 훌륭한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공계 선배’로서 두 사람은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에게도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황 교수=한국은 절대 함부로 볼 나라가 아닙니다. 청소년들의 미래에는 정말 광활하고 비옥한 토양이 깔려 있어요. BT의 실용화에 대해 냉소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있지만 30년 전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똑같이 냉소적 견해가 있었습니다. 부정과 냉소로는 결코 미래를 가꿀 수 없어요. 얼토당토않은 꿈이면 몽상가지만 우리에겐 IT라는 굳건한 바탕기술이 있어 미래가 밝다고 봅니다. 한국사회 일각에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가꿔 나가는 방식과 철학에 따라, 그리고 지도력에 따라 미래에 엄청난 폭발력을 나타낼 수 있는 잠재력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황 사장=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창의성을 갖고 있어요. 또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다양한 분야를 통합(인터그레이션)하려는 습성이 강합니다. 융·복합화 시대에 알맞은 특성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얼마 전 국내 모 대학에서 특강을 하는데 졸고 있는 학생이 있어서 깨워서 물어보니 전자전기공학부에 입학했는데 의대로 옮기겠다고 하더군요. 외국은 달라요. 기술 자체를 너무나 순수하게 좋아하는 데 비해 우리 대학생들은 너무 현실적인 것 같아요. ‘나와서 뭘 하느냐’에 너무 신경을 씁니다. 능력은 뛰어나나 부모 권유나 사회 분위기 때문에 공학부에서 의대로 전과하겠다는 게 우리 현실이므로 국가 차원에서 이공계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황 교수=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과학기술을 무시한 선진국은 없지요. 아무리 자원이 풍부해도 기술이 없으면 안 됩니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에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데 최근 젊은이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는 것 같아 반가워요. 요즘 내게 e메일을 보내거나 만나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과학자가 되겠다’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 매우 기뻐요. ‘황창규’라는 IT 신화의 역할 모델이 한국에 있는 것이죠. 의대 저학년들도 개업하지 않고 박사 과정에서 연구를 하겠다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황 사장=정부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민간의 역할은 한계가 있어요. 국가 차원의 투자와 관리 능력이 필요해요. 반도체에서 13년 동안 1등 한 것도 그냥 된 게 아닙니다. 뼈를 깎는 노력은 기본이고 시장 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독창성이 필요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황 교수=그런 의미에서 나는 현대판 세종의 시대를 꿈꿔 봅니다. 국민은 과학기술과 국가 중흥이라는 측면에서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봐요. IT에서 나오는 성과에 대해 여야 막론하고 박수를 치는 것을 보면 충분히 분위기는 성숙한 것 같아요. 세종의 시대를 구현하자는 역사의식을 가진 분들이 지휘봉을 쥔다면 국가 중흥의 역사적 시점이 곧 올 것 같아요. 역사는 창조하는 것이지 운명에 따라 이끌리는 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황 사장=우리 세대는 외국잡지를 베껴 번역한 책을 보며 꿈을 키워 왔죠. 지금 젊은이들은 성공한 역할 모델을 갖고 자라난 세대입니다. 이들이 정말 좋은 토양이죠. 90% 이상의 젊은이들이 미래를 걸어볼 만한 인재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실패하면 얘기해 줄 선배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죠.

▽황 교수=한국의 40∼60대가 걸어왔던 길은 모든 것이 회색빛 불확실성이었지만 이제 화창한 봄날 아닌가요. 그 길을 과감하게 택하지 못하는 젊은이는 미래가 없는 나약한 체질로밖에 볼 수 없어요. 우리 젊은 청소년들에는 고귀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본 역사적 아픔도 있고 동족상잔의 비극도 있고 배고픔과 서러움의 한의 역사도 있죠. 이런 것들이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파이팅 할 수 있는 굉장히 큰 유전적 자산입니다.

▽황 사장=너무 딱딱하게 이야기가 흐른 것 같네요. 매일 아침 단전호흡과 명상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황 교수=호흡은 자기 컨트롤입니다. 몰두하다 보면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미래 의료기술연구회라는 조직이 개인 교습을 해 줍니다. 서른 명의 국내 대표적 의학자들로 구성돼 있는데 그분들에게 고도의 현대 의학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배우면서 ‘우리가 꿈꾸는 기술의 돌파는 어떻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죠.

▽황 사장=저는 예술 쪽에 관심이 많아요. 예술을 접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합니다. 전혀 다른 영역인데도 영감을 얻습니다. 마에스트로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자세를 보고 많은 것을 느낍니다.

▽황 교수=상당히 좋은 취미인 것 같네요.

▽황 사장=1년에 해외 출장이 170일 정도 되는데 비행기 안에서 정말 창의적이고 업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런저런 엉뚱한 아이디어를 적어보기도 하죠. 엉뚱한 발상이 업무에도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얼마 전 해군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충무공의 전법과 사업 전략을 연결시켜 설명했더니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두 시간여 진행된 이날 대담에서 두 사람은 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는 물론 국가의 장래와 가능성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이들을 역할모델로 삼은 청소년들이 쭉쭉 큰다면 한국은 희망과 자신을 가져도 될 듯싶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황창규가 본 황우석 “우직한 사람”

황우석 교수는 잘 알려진 것처럼 연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남다른 학자다. 연구에 매달려 몇 시간밖에 잠을 못 자고도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같이 연구실에 나와 학생들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한다. 건강이 염려스러울 정도다.

황 교수의 어린 시절 별명이 자신의 일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소처럼 일관되게 밀어붙인다는 뜻에서 ‘찍소’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릴 때 키우던 소를 보며 평생 소를 연구하겠다는 다짐이 지금의 황 교수를 낳았다고 하니 그의 한 우물 인생은 정말 본받을 만하다.

황 교수는 또 세계 모든 언론과 학계가 주시하는 독보적 위치에 올랐지만 본인의 모든 업적을 능력이 아닌 성실과 노력의 결과로 돌리는 겸손한 ‘학자’이다.

그만하면 호사를 누릴 만도 한데 황 교수는 여전히 소박한 웃음뿐이다.

배아줄기세포 배양과 관련된 논문이 사이언스에 실렸을 때 황 교수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을 기념으로 선물한 적이 있다. 그때 “이런 좋은 만년필은 처음 본다”며 기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껏 잘해 왔듯이 황 교수가 세계 모든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이 돼 줬으면 좋겠다. 황 교수만 생각하면 우리나라 아니, 세계 생명공학의 미래가 든든하다.

■황우석이 본 황창규 “뜨거운 사람”

황창규 사장의 모습을 떠올리면 즐거워진다. 황 사장이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그가 성공을 많이 거둘수록 BT의 비전도 커지기 때문이다.

사실 황 사장과는 서로 연구 성과를 발표할 때마다 전화로 덕담(德談)을 주고받는 사이다. 워낙 바쁜 분이다 보니 공식 행사장이 아니고서는 직접 얼굴을 마주치기는 힘들다. 하지만 짧은 만남의 순간들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한마디로 뛰어난 전략가다. 세계 최고의 IT 전문가들 앞에서 독창적인 ‘황의 법칙’을 당당히 설파하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단순히 과학기술적 지식만으로는 세계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없다.

황 사장은 전문 역사가나 철학자 못지않은 소양과 통찰력을 갖췄기 때문에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실험에만 매달리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는 나로서는 솔직히 부러울 때도 있다.

그는 또 맹장(猛將)과 덕장(德將)의 면모를 동시에 갖춘 지휘관이다. 위기가 닥칠 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하는 맹렬함은 물론 자신의 조직원들을 후덕함과 부드러움으로 감싸는 데 인색하지 않다.

황 사장이 또 한번 세계 최고의 IT 제품을 소개할 날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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