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환율 혹한기’ 기업생존법

  • 입력 2004년 12월 1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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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출기업들에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추위에 약한 중소 수출기업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설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혹한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바로 환율 이야기다. 전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달러 약세로 원화뿐 아니라 유로화, 엔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통화는 달러화에 대해 초강세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더욱 힘든 것은 환율 변동 속도가 너무 급격해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과도한 환시장 동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데는 각국이 동의한다. 하지만 나라마다 입장은 다르다.

엄청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은 달러약세를 시장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워싱턴 국제경제연구소(IIE)는 지난달 30일 달러화 가치가 지금보다 15%는 더 떨어져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중국도 손해 볼 일은 없다. 달러화에 위안화 가치를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달러약세로 가격경쟁력이 더욱 강해지는 모순이 나타나,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으로부터 환율 시스템을 정비하라는 압력이 거세지만 국력을 배경으로 버티면 된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나머지 나라들만 바빠졌다. 유로화는 사상 최고치, 원화는 7년, 엔화는 4년6개월, 싱가포르달러화는 6년, 대만달러화는 3년 만에 각각 최고치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국은 자산 감소를 줄이기 위해 보유 달러를 다른 화폐로 바꾸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달러화를 위안화로 바꾸려는 수요가 폭증했다. 요컨대 달러화 추가 하락에 대한 우려로 달러 가치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셈이다.

JP모건은 원화 환율이 올해 말까지 달러당 1040원으로 내려가고, 내년 1·4분기에 1000원, 2·4분기에는 980원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국내 수출기업들이 주장해 온 환율 마지노선은 1050원이었다. 어느 정도 엄살을 감안한다 해도 이 정도라면 적지 않은 기업이 수출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관리 변동환율제를 포기하고 완전 변동환율제로 전환하면서 금융시장을 완전히 열었다. 이런 개방경제 체제에서 범세계적 차원으로 진행되는 달러약세에 대한 정부의 시장개입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세를 바꿀 수는 없다.

따라서 지금은 기업 스스로 살아남아야 할 때이다. 혹한기에 얼어 죽지 않으려면 추위를 막아주는 각종 장비를 갖춰야 한다.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환율 민감도를 낮춰야 한다. 국경의 의미가 없는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외환 리스크를 관리하지 않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

일류를 지향하는 기업이라면 내년 환율을 950원 이하, 그렇지 않은 기업이라도 1000원 이하는 각오하고 경영계획을 짜야 할 것이다. 어려운 고비지만 무사히 넘긴다면 경쟁력은 질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도 있다. 다행히 원화 강세로 수입가격이 떨어지고 물가가 안정되면서 국내수요가 살아난다면 금상첨화다.

지금 기업인들은 총성 없는 환율전쟁의 최일선에 서 있다. 여기서 많은 기업이 살아남는 나라가 강한 나라다. 정치인이나 관리보다 지금은 기업인들의 투지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기업인들이여, 파이팅!

김상영 국제부장 yo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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