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내가 386세대에 충고 한마디 못하는가”

  • 입력 2004년 7월 20일 19시 00분


코멘트
“지금은 떠날 때가 아니다. 나라 경제는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만둬야 할 때는 그만두겠다. 자리에 연연하지도 않겠다.”

사의(辭意) 표명설이 흘러나온 19일 밤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어렵게 만났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이 부총리 자택 앞에서 1시간 이상 ‘무작정’ 기다린 뒤였다.

긴 시간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자에게 일단 문을 열어준 이 부총리와의 ‘심야(深夜)인터뷰’는 예상 외로 2시간을 넘겼다. 19일 오후 10시반경 시작한 인터뷰는 20일 오전 1시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그만큼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 대통령과의 관계, 국가 경제에 대한 비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흔들림 없는 시장주의’였다.

먼저 사의 표명 소문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 부분은) 내가 말할 수도 없고 말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표명했어도 말 못하고 표명 안 했어도 말 못한다. 청와대에 가서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청와대에서는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고 표명했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그 말이 맞겠지.”

최근 불거진 ‘자문료 파문’에 대해 물어봤다. 이 부총리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보도가 나오기 보름 전 언론계나 정부 내에서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하지만 위법성이 없어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도덕성 시비를 건다. 100년 전으로 돌아가자는 건가.(이번 파문의) 진원지가 금융감독원은 아니다.” 이 부총리의 경제관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정권 내 일부 세력을 겨냥한 것으로 비치는 발언이었다.

잠시 후 캔맥주가 한 개씩 돌았고 이 부총리는 이때부터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 놓았다.

“나는 그만두면 된다. 때가 되면 그만두겠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라 경제를 바르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 저녁식사를 같이 한 곽결호 환경부 장관에게 ‘환경비용을 아끼면 나중에 엄청난 비용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라 경제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려워도 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아야 살 수 있다.”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사례도 예를 들어 설명했다.

“3만달러짜리 보석을 프랑스 파리에 가서 사면 ‘나쁜 사람’이라고 하고 서울에서 사면 ‘더 나쁜 사람’이 된다. 이게 뭔가. 3만달러짜리 보석을 외국에서 사면 고스란히 외국으로 나가고 서울에서 사면 원석(原石)값 6000달러만 외국으로 새 나가고 나머지는 서울에 남는다. 이걸 거부하면 국내에서 돈 벌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최근 큰 논란이 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에 대한 생각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건 해프닝이다. 온 나라가 이 문제에 국력을 쏟아 붓고 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너나 할 것 없이 논란을 벌이다가 몇 가지 항목은 공개하고 나머지는 공개하지 않기로 하고…. 국가 지도자들이 진이 빠지도록 매달리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주식 백지신탁제도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주식 백지신탁제도란 고위 공직자가 갖고 있는 주식을 신탁기관에 맡긴 뒤 처분 운용에 관여하지 않고 임기가 끝난 뒤 돌려받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사유재산이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는) 멀쩡한 사람들이 공직을 떠나야 한다. 미래를 생각하는 정책을 써야지 왜 과거지향적인 정책을 쓰는 것인가.”

맥주 한 캔을 비우고 웃옷 단추를 풀어헤친 그는 이라크 파병 문제로 말을 옮겼다. “우리는 어렵게 살 때 베트남전쟁에 자원했다. 돈을 벌어오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어떤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일이 매도를 당하고 있다.”

이른바 ‘386세대’에 대한 아쉬움도 숨기지 않았다.

“내가 30대와 40대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이 세대가 나라를 위해 가장 중요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생산성이 가장 높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치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나라를 위해 386세대가 분발해야 한다. 며칠 전 강연에서도 이런 점을 말한 것이다. 내가 그 정도 얘기도 못하는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점을 지적할 것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대통령의 철학을 존중한다. 그 분은 나라를 위해서 애쓰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방식도 중요하다. (정부와 언론의 관계 등) 모든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기업이 기업설명회(IR)를 하듯이 정부도 해야 한다. 지난주에 가진 정책세미나도 그런 생각에서 가진 것이다. 정부가 해외IR를 나가 외국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국내 기자들에게도 설명해야 한다. 앞으로도 격주에 한 번 정도 정례적으로 세미나를 할 생각이다.”

―대통령의 언론정책과 조금 다른 것 같다.

“정책이나 현실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끝까지 지키는 게 중요하다. 노 대통령도 억울한 점이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애쓰는데 정치적 이유 때문에 경제적인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로라 타이슨을 거론했다.

“타이슨 위원장을 현직 때 만난 일이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경제 노선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그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노 대통령과 부총리의 관계도 비슷한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린 뒤 “유도질문하지 말라”며 비켜나갔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잇단 쓴소리…‘코드 맞추기’ 한계 왔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최근 ‘행보(行步)’가 예사롭지 않다.

14일에는 ‘386세대 경제 무지론(無知論)’을 정면으로 거론했다. 이 부총리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 내부의 ‘핵심 실세(實勢) 그룹’으로 꼽히는 청와대 및 여당 등의 일부 386세대를 겨냥한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19일에는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나는 그만 두면 되지만 나라 경제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부처 및 금융계 일각에서는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결별의 시기가 다가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직설화법’ 쓰기 시작한 이 부총리=이 부총리는 그동안 정치권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 왔다.

그런데 14일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 초청 강연에서 “한국경제가 한계에 부닥친 이유는 주력 세대인 386세대가 정치적 암흑기에 저항운동을 하느라 경제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정치하는 법만 배운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우리 경제의 현주소와 관련해 “위기는 아니지만 우울증과 무력증에 빠진 환자와 비슷하다”는 진단도 덧붙였다.

이날 발언은 평소 특유의 ‘간접화법’을 해 오던 그로서는 이례적으로 강한 톤이었다.

더구나 이날 발언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19일 밤 본보 등 일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386세대와 관련해 앞으로도 할 말은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자문료 파문’이 흘러나온 배경에 대해서도 상당한 의혹을 갖고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가(官街) 및 금융계에서는 이헌재-전윤철(감사원장) 흔들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여전히 있다.

▽권력핵심과의 관계가 거취의 핵심 변수=일단 ‘이헌재 사의설’이 수그러들었지만 휴화산(休火山)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그는 올해 2월 취임 직후부터 성장을 통한 고용 창출, 기업가 정신 고양 등을 기치로 내걸었다. 또 경제부총리 내정을 받은 직후에는 “개혁과 성장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한 이후 여당 내에서 총선 민의를 거론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당정회의에서도 재경부와 여당과의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 부총리는 현 정부 내의 이른바 개혁세력과 ‘코드’가 다소 맞지 않으며 이런 한계를 때로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그가 자신의 역할에 한계를 느낄 경우 경제부총리란 자리에 그리 집착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그가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며, 떠날 때가 되면 알려주겠다”고 말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사의를 표명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