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CLO시대 열리나

  • 입력 2004년 7월 20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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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윤리경영’을 외치며 강골검사 출신의 변호사 등 법조인들을 속속 영입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준법과 윤리 문제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인식하면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대응책을 마련하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방식에서 벗어나 적극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

법조계와 재계는 이제 한국에도 기업 안에서 법률적인 문제를 총괄 지휘하는 ‘최고법률책임자(CLO·Chief Legal Officer)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법조계에서 기업으로=삼성은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을 법무실로 확대 개편하고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출신의 이종왕 변호사를 상임법률고문 겸 법무실장에 영입했다. 이 변호사는 앞으로 사장급 임원으로 삼성그룹의 경영에 대한 법률적 검토와 지원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삼성측은 이 자리를 고사하던 이 변호사를 한 달가량 설득하는 등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이에 앞서 부장검사 출신인 김준호 부사장은 지난달 SK그룹의 윤리경영실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그는 2주일에 한 번 임원회의에 참석하고 그룹의 현안에 대한 법률적 검토, 투자회사에 대한 감사 등을 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과거 상식선에서 내려지던 경영상의 결정들을 법적인 관점에서 깊이 들여다보는 작업”이라며 “분쟁 발생의 소지를 원천 차단하는 법적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주로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SK는 김 부사장 외에 판사 출신의 강선희 변호사(39·여)를 법률자문역(상무)으로 영입했다.

▽향후 활동에 쏠리는 눈=이 같은 법무기능 강화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기업들의 인식 변화에 따른 것이다.

최근 몇 년간 SK그룹 분식회계 사건과 현대 대북송금 의혹사건,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삼성의 전환사채(CB) 불법 발행 논란 등으로 재계 관계자들이 법정을 들락거리는 일이 반복됐다. 이는 기업의 이미지와 신뢰도 훼손은 물론 거액의 소송 등으로 연결됐다.

경영 관련 법규가 날로 까다로워지고 있는 것도 주 원인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증권집단소송법 외에 금융지주회사법, 제조물책임(PL)법 등 경영 관련 ‘지뢰’가 줄줄이 놓여있다.

거물급 변호사의 영입이 편법 해결을 위한 ‘로비용’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소장은 “기업이 충실한 법률 활동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법조계 전관예우 등을 이용할 것인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변호사 영입은 문제가 된 사건들이 이미 터지거나 정리된 후에 이뤄졌다”며 “이는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관점에서의 대응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훈규 대검찰청 형사부장은 “더 이상 인맥이나 로비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법조인들이 기업으로 나가 법과 경영을 연결시키는 선각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그룹의 법무기능 현황
그룹법률자문사법무팀 규모
(직원 포함)
주요 활동 변호사최근 법적으로 문제된 사건
삼성김&장, 태평양, 광장 등그룹 계열사
포함 50여명
대부분 30, 40대젊은 변호사 최근 이종왕 변호사를법무실장으로 영입불법 대선자금 수사에버랜드의 편법 전환사채(CB) 발행 사건
SK김&장,
세종, 광장 등
15명김준호 윤리경영실장 강선희 법률자문역분식회계 사건
불법 대선자금 수사
현대차김&장,태평양, 율촌 등13명현대자동차에해외, 국내 담당 변호사 각 1명씩현대상선 등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한진김&장,광장 등20명소속 변호사 없음불법 대선자금 수사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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