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社 국가 신용등급 평가 “헷갈려”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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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들은 개별 국가의 정치적인 위험도를 신용등급에 어떻게 반영할까. 미국 무디스는 최근 “북핵 리스크로 인한 긴장이 완화됐다”며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신용등급 자체는 A3로 변화가 없지만 일단 긍정적 신호다. 반면 조사·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은 “북핵 협상이 한반도의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정치적인 리스크에 대한 평가 차이로 투자 대상 국가의 신용등급이 달라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신뢰 흔들리는 국가 신용등급 평가=무디스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영국 피치 같은 권위 있는 신용평가회사들도 국가의 미묘한 정치적 상황을 신용 평가에 반영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1998년 러시아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나 1997년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동요 사태, 1994년 멕시코의 외환위기 등이 실패 사례로 거론된다. 투자자들이 뒤늦게 위험을 알아차리고 너도나도 채권을 내다팔았을 때는 이미 채권 가격이 폭락한 뒤였다.

신용평가회사들이 투자 대상기업의 정치적 변수를 제대로 따지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 투자자들은 신용평가회사들의 판단을 외면하고 대신 사적인 정보원이나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말에 더 의존하는 상황이다.

시장의 반응도 미지근한 편. 무디스가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한 단계 올린 뒤에도 한국의 국채 가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지만…”=신용평가회사들은 각각의 요소를 철저하게 점검한다고 항변하고 있다. 신용평가 대상 국가의 정기적 방문, 현지 관계자들과의 꾸준한 만남, 많은 전문가들과의 논의 등을 거친다는 것.

무디스가 베네수엘라에 대해 최하 등급 수준인 ‘Caa1’을 부여한 것이 한 가지 사례.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주요 석유생산국이지만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퇴진 가능성 등이 정치적 위험도를 높인다는 이유다.

그러나 평가자들조차 “정치 분야의 드러나지 않는 ‘블랙박스’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고백한다. 이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민중 봉기나 군사정권의 출현 가능성, 밀실에서의 정치적 논의 등까지 꿰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S&P의 경우 국가 신용을 평가하는 10가지 기준 가운데 9가지는 객관화시킬 수 있는 수치 자료이고 나머지는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다.

무디스는 작년에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올렸지만 이후 러시아 정부가 거물급 기업인들에 대한 수사에 나서면서 채권시장이 얼어붙었다. 무디스의 국채 평가 기준에서 정치 리스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25% 정도. 채권 딜러들은 “신용평가회사들이 러시아의 재정 상황이 좋아진 점에 혹해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의 부정적인 영향을 점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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