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식품업체 ‘커가는 갈등’

  • 입력 2004년 6월 14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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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식품회사인 CJ는 5월 초 프랑스계 할인점인 까르푸 매장에서 자사 전 제품을 철수했다. 밀가루 콩 등 원재료값 인상에 따라 납품가격을 올려달라고 요청했으나 까르푸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CJ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장사할 수 없다고 항의했지만 까르푸는 “가격인상폭이 지나치다”며 맞섰다.

그나마 CJ는 대형할인점에 맞설 힘이 있지만 중소식품회사는 납품가격을 몇 년째 올리지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납품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제조업과 유통업간 ‘힘의 균형’이 바뀐 점이 작용한다.

과거 ‘소품종 대량생산’ 시절에는 제조업체가 제품공급권을 갖고 우위에 섰다. 그러나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바뀌면서 유통업체가 주도권을 잡았다.


이는 이마트 홈플러스 까르푸 등 할인점과 식품제조업체와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할인점의 급성장=1999∼2002년 할인점 매출액은 연평균 32% 증가했다. 이 기간 재래시장의 매출액은 오히려 줄었고 백화점은 11% 증가에 그쳤다.

특히 2002년 전체 유통업체 매출에서 할인점의 비중이 17.5%로 백화점(16.5%)을 앞질렀다.

경영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 서울지사의 김연희 부사장은 “할인점의 힘은 직접매입비율이 높은 데서 나온다”고 말했다.

백화점은 특정업체가 입점해 물건을 팔면 그 수수료를 받는다. 물건이 팔리지 않는 데 따른 재고 부담은 입점업체가 떠안는다. 따라서 입점업체의 판매가격은 백화점으로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반면 할인점은 납품업체의 상품을 직접 사고 재고 부담을 진다. 따라서 납품업체가 할인점을 이용하면 재고 부담이 없는 만큼 납품가격을 낮출 수 있다.

제품가격이 백화점보다 할인점이 싸기 때문에 ‘똑똑한’ 소비자는 할인점을 찾는다는 것.

김 부사장은 “향후 성장 전망도 백화점은 어둡고 할인점은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납품가격 인하 압박=베인앤컴퍼니 박성훈 이사는 “할인점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누가 더 싸게 물건을 납품받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며 “이는 결국 납품가격 인하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식품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납품가격을 깎아야 하는 할인점간에 충돌이 생긴다.

실제로 할인점의 힘이 커지면서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주요 6개 식품의 가격은 오히려 내렸다.

한 식품회사 관계자는 “한국의 할인점은 외국처럼 도시 외곽의 저가 창고형이 아니라 시내 한복판에 고급매장을 열어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므로 17∼20%의 마진을 남기려면 제조업체를 압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도 한국과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초대형 할인점인 월마트는 납품업체에 끊임없이 가격 인하를 요구했고 이는 미국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0.5∼1%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식품회사의 선택은=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02년 한국의 매출액 상위 6개 식품회사의 순이익률은 5.0%로 미국(12.4%) 유럽연합(8.7%) 호주(7.2%) 등에 비해 낮다.

김 부사장은 “식품회사는 유통회사와의 갈등 속에서 수익성이 계속 떨어졌으며 앞으로 더 심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식품회사의 대안으로 △생산 효율화를 통한 비용 절감 △대표 브랜드 육성 △지속적 연구개발(R&D)을 통한 신제품 개발 등을 꼽았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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