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뛰어야 할 기업이…

  • 입력 2004년 5월 27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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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나가 싸워야 할 장수(將帥)들이 내정(內政)에 휘말려 싸움터에도 나가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최근에 만난 공무원 출신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K씨는 대기업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재계의 ‘지루한’ 줄다리기를 빗대 이렇게 말했다.

K씨는 “해외에 나가 세계 일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대기업들이 집안 사정에 발목이 잡혀 거기에 온 신경을 쓰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텔 노키아 도요타자동차 등 해외 경쟁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투자를 늘리고 점유율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한국의 대기업들은 국내에서 체력을 허비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적잖은 경제관료들이 “대기업들이 투자에 신경쓰기보다는 경영권 지키기에 급급하고 있다”며 우려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한국에 온 지 14년 됐다는 한 유럽 외교관은 며칠 전 기자와 만나 “한국은 성장-개혁, 지배구조개선-경영권방어라는 논쟁만 벌이고 있지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중장기적인 비전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고 뼈있는 소리를 했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까.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직후 큰 변화를 겪었던 대기업정책이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았다고 분석한다.

은행돈을 빌려 계열사를 키우고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으로 계열사를 늘려나가던 대기업집단의 방만한 선단(船團)식 경영은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선단식 경영의 고리를 끊는 정책이 불가피했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국경 없는 글로벌경제 속에 각국이 국부(國富) 증진을 위해 뛰는 현실을 보면 대기업정책의 큰 틀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여전히 ‘재벌’은 부도덕한 존재이고 해체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재계도 투명경영과 바람직한 지배구조 등 자기혁신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이 27일 구본무(具本茂) LG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주요 그룹 총수와의 간담회를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와 재계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 기자만의 바람일까.

신치영 경제부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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