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난 공무원 출신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K씨는 대기업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재계의 ‘지루한’ 줄다리기를 빗대 이렇게 말했다.
K씨는 “해외에 나가 세계 일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대기업들이 집안 사정에 발목이 잡혀 거기에 온 신경을 쓰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텔 노키아 도요타자동차 등 해외 경쟁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투자를 늘리고 점유율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한국의 대기업들은 국내에서 체력을 허비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적잖은 경제관료들이 “대기업들이 투자에 신경쓰기보다는 경영권 지키기에 급급하고 있다”며 우려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한국에 온 지 14년 됐다는 한 유럽 외교관은 며칠 전 기자와 만나 “한국은 성장-개혁, 지배구조개선-경영권방어라는 논쟁만 벌이고 있지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중장기적인 비전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고 뼈있는 소리를 했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까.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직후 큰 변화를 겪었던 대기업정책이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았다고 분석한다.
은행돈을 빌려 계열사를 키우고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으로 계열사를 늘려나가던 대기업집단의 방만한 선단(船團)식 경영은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선단식 경영의 고리를 끊는 정책이 불가피했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국경 없는 글로벌경제 속에 각국이 국부(國富) 증진을 위해 뛰는 현실을 보면 대기업정책의 큰 틀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여전히 ‘재벌’은 부도덕한 존재이고 해체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재계도 투명경영과 바람직한 지배구조 등 자기혁신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이 27일 구본무(具本茂) LG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주요 그룹 총수와의 간담회를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와 재계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 기자만의 바람일까.
신치영 경제부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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