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부유층 조기상속 바람

  • 입력 2003년 3월 31일 18시 41분


코멘트
최근 일부 부유층 사이에 조기 상속 바람이 일고 있다.

이 같은 부(富)의 조기 대물림 바람은 새 정부가 상속증여세에 대한 ‘완전포괄주의’를 연내에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히는 등 편법 상속에 대한 규제 움직임을 구체화하면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특히 7월부터 공시지가가 30%가량 오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 푼이라도 세금을 덜 내고 부동산을 상속하려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

▼관련기사▼

- 20억빌딩 감정가 낮춰 稅1억 줄여

사업가 A씨는 지난달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땅 160여평을 두 아들에게 증여하기로 결심했다. 이 땅의 공시지가는 현재 26억9000여만원, 정상적으로 증여할 경우 약 8억14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더구나 7월 1일 이후로 증여 시점을 넘기면 공시지가가 32억3000여만원으로 뛰어올라 증여세는 10억2600만원으로 불어날 전망. 이에 따라 A씨는 서둘러 아들에게 이 땅을 증여하기로 한 것.

A씨는 감정평가법인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조기 상속을 할 경우 감정가도 15% 정도 더 낮출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증여세도 3억6000만원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근의 이 같은 조기 상속 움직임 속에 외환위기 당시 한시적으로 발행된 ‘비과세 무기명 채권’이 불법 증여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사실상 현금과 마찬가지여서 ‘탈세 상속’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

1998년에 5년 만기로 발행된 고용안정채권 등 3개 비과세 무기명채권(발행금액 3조8735억원)은 현재 1만원짜리가 1만5000∼1만6000원에 거래되는 등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명동 사채시장 거래인 B씨는 “비실명인데다 세금이 없기 때문에 높은 프리미엄이 붙어도 매물을 내놓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현금과 무기명채권 등을 보관하는 금융기관의 대여금고도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서울 강남의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10억원 이상의 예금을 맡긴 고객들을 대상으로 대여금고를 운영하는데 금년 들어 수요가 크게 늘어나 250개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대부분 현금과 마찬가지인 가차명 통장과 무기명채권 비망록 등 재산 관련 서류들을 보관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기 상속 붐이 부유층 사이에 번지면서 은행과 증권사들은 국세청 출신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세무사를 보강하는 등 본격적인 ‘세(稅)테크’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 증권사 지점의 경우 지난달 10년차 이상 경력의 국세청 조사 전문가 6명을 스카우트해 절세(節稅) 상담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 강남 B세무상담업체는 “지난해까지 한 달에 1건 정도에 불과하던 증여세 관련 문의가 금년 들어 하루 2, 3건 정도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부동산 증여 의뢰도 급증해 이 달에만 10여건을 처리하고 있다.

이 밖에 일부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해외투자로 위장한 뒤 자금을 국내로 다시 들여와 증여하기 △장외거래 주식을 싼 값에 구입한 것처럼 꾸미기 △현금 상속 △종신보험을 통한 상속 등 다양하고 교묘한 방식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사 채상병(蔡相秉·55)씨는 “최근 일부 부유층은 세금을 적게 내면서 재산을 후대에 넘기는 것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다”며 “상속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 도입과 공시지가 인상 등으로 인해 조기에 증여하려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