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진단-위기 해법]"경기위축 불보듯…금융대책시급"

  • 입력 2003년 3월 13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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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한국경제를 둘러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하강세를 그리고 있고 ‘SK 사태’의 후유증도 만만찮을 조짐이다. 본보는 청와대, 여야 정치권, 경제부처, 학계, 경제연구기관, 금융권의 경제 전문가 8명으로부터 현 경제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각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외환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 대단히 어려운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또 금융시장 안정과 ‘시장개혁(재벌개혁)’ 속도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리=김광현기자 kkh@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설문▼

①지금 한국경제는 어떤 상태인가. 위기라고 볼 수준인가. 향후 경제전망은 어떤가.

②북한 핵문제와 이라크전 등 외부요인을 제외한 한국경제의 ‘체력’은 어떻다고 보는가. 만약 외부요인이 아니라도 어렵다면 현 상황을 촉발한 내부요인은 무엇인가.

③현재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나.

▼정세균 민주당 정책위의장▼

①긴장해야 할 상태다. 위기는 아니지만 방심하거나 안이하게 대처할 상황은 아니다. 이달 초보다 상황이 악화된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SK사태’가 가장 영향이 컸다. 긴장하고 예의주시하면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필요한 정책을 강구할 때다.

②내부도 아주 건강한 상태라고 보지는 않는다. 대체적으로 건강한 편이지만 문제점도 있다. 지금까지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지만 잘 되지 않았고 이것이 현재 상황을 촉발한 것으로 본다. 또 지난 5년간 경제위기 극복에 주력하다보니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신(新)산업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③여러 방안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지만 우선적으로 투자 및 소비심리 안정이 추진되어야한다. 그 다음으로는 꾸준한 기업개혁 추진을 꼽겠다. 단 메스를 들이대는 개혁보다는 기업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임태희 한나라당 제2정조위원장▼

①지금의 경제상황은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와 기업이 심리적으로 얼어붙었다. 지표악화는 세계적 현상이긴 하다. 그러나 무역적자 및 반도체 가격 하락, 유가 상승에 따른 교역조건 악화, 기업의 투자 위축 등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대응방식이 원인이 됐다.

②기초체력은 상대적인 것으로 경제외적인 요인을 제외하고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상황악화 배경은 기업이 대외경쟁력을 고려할 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개인이 돈 쓰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또 공장설립 유통 금융 등 각 분야의 규제도 기업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법인세 인하문제를 둘러싼 혼선 등 헷갈리는 정부 정책이 많다.

③정부는 악화된 경제현실을 인정하고, 신뢰받을 투명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경제특구는 관련 법률에 따라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행정수도는 어디에 세울지 등 정책 프로그램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스스로 씀씀이를 줄여서 어려운 부문에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윤제 대통령경제보좌관▼

①시장불안 심리가 확산된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상황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달리 지금은 외환부문에 대한 위기 가능성은 없다. 이라크 사태와 북한 핵문제 등 대내외 불확실성에 SK 문제까지 겹쳐 채권금리가 올라가고 있지만 북핵에 대한 한미간의 이견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므로 너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②중장기적으로 경제가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어디에서 찾을지가 고민이다. 단기적으로는 안보문제를 제외하면 경제상황이 크게 불안한 것은 아니다.그동안 소비에 의해 우리 경제가 성장한 부분을 어떤 성장 동력으로 대체할지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③새 정부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시장을 통한 개혁을 늦추지 않겠지만 대통령이 몇 차례 언급한 것처럼 개혁할 의지가 있는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을 수준에서 시장개혁을 추진하겠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주시하고 있으며 조만간 안정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체적인 시장대책은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의 몫이다.

▼김영주 재정경제부 차관보▼

①일부 경제지표가 위축되고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위기는 아니라고 본다. 당분간 대내외 여건의 빠른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충격을 흡수하고 안정을 찾으면서 점차 호전될 것으로 전망한다.

②소비와 설비투자는 다소 부진하나 수출과 건설투자는 호조다. 다만 주변상황이 불투명하므로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새 정부 출범 등에 따른 일시적 정책의 불확실성이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이라크전, 북핵 문제 등 경제외적 요인이 경기위축의 근본 원인이다.

③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조속히 안정시키고 관망하는 외국인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새 정부 정책방향과 추진일정을 이달 중 조속히 제시할 계획이다. 재정 조기집행과 투자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금융시장 안정대책 등 탄력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

▼박원암 홍익대 무역학과 교수▼

①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올해 초에 밝힌 경제전망을 아직 수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현재 금융시장의 불안이나 실물경제의 좋지 않은 흐름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②이라크 전쟁, 북핵 문제, 가계신용 부실과 내수 위축은 어느 정도 예견이 됐던 사안들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너무 낙관적으로 봤다. SK 문제는 충격이 조기 해소될 가능성도 있고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 새 정부가 노사관계와 재벌정책에 있어서 너무 일방적인 목소리를 낸 것이 경제에 악영향을 줬다. ‘몰아치기식 개혁’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선악(善惡) 개념 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경제다.

③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재정 조기집행은 당연히 하지만 효과는 의문이다. 정부가 금융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해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상무▼

①자칫하면 심각한 위기로 갈 수 있다. 체력이 매우 약해져 있다.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을 완료하지 못한 상황에서 위기 상황을 맞은 것이 걱정이다. 외환보유액이나 기업의 재무구조 등 외형상으로는 괜찮지만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 다만 금융시장의 불안만 조기에 해소되면 경제는 점차 좋아질 것이다.

②가계대출 부실이 가장 큰 내부 요인이다. SK글로벌 외의 분식회계 기업이 있을 것이라는 불신도 현재의 상황을 촉발했다. 97년 외환위기 때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좋아 한국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지금은 외부여건이 좋지 못하다. 그렇지만 아직은 위기를 감당할 만한 기초체력을 갖고 있다.

③금융시장의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 부실채권을 지나치게 기피하고 환매를 지속하면 대책이 없다. 불안심리가 확산되기 전에 정부가 콜금리 대폭 인하, 한국은행의 국고채 매입 등 금융시장 안정 의지와 대책을 내놓고 기업에 불안요인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

①외환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대외여건을 감안한다면 경제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외환위기 때는 미국경제가 좋아 수출로 돌파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경제 회복은 올해 중에는 어렵다. 연말까지 하강국면이 지속될 것이다.

②가계부채와 SK사태로 불거진 기업의 회계 불투명성 등이 내부요인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은 SK글로벌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기업이 분식회계를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시장의 불신이 결국 현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데 많은 작용을 했다. 하지만 아직은 한국경제가 위기를 감당할 만한 기초체력이 있다.

③가계부채 문제를 천천히 안정시키는 것(연착륙)이 중요하다. 정부가 환율 안정에 나설 필요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 경제정책의 일관성과 기업경영환경 개선이 중요하다. 경제에 갑작스러운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분식회계 등 불신요소를 없애나가야 한다.

▼신인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①1997년 같은 위기상황은 아니다. 환율급등 금리상승 주가급락 등 금융시장이 요동하고 있지만, 부정적 충격의 발생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일 뿐 ‘시스템 리스크(체제위험)’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부정적 충격요인이 당분간 지속돼 앞으로 경기위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②수출은 높은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소비와 설비투자의 위축이 예상보다 심하다. 예상보다 소비둔화가 심하고 어느 정도 회복이 기대되었던 설비투자의 회복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것은 새로운 충격의 발생 때문이다. 국내적 충격이라고 한다면 정권교체기의 정책방향 재정립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있을 수 있다.

③당장은 SK글로벌 사태에 따른 투신권의 유동성 수요에 적절한 공급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가급락 등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북핵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금리인하 등 경기침체에 대한 거시정책적 대응도 비상계획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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