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재벌정책 긴급좌담]<下>증권집단소송제 도입

  • 입력 2003년 1월 5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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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측이 조기 도입을 추진중인 증권 집단소송제도는 재계의 반대로 갈등이 만만찮은 분야로 꼽힌다. 왼쪽부터 김석중 전경련 상무, 선우석호 홍익대 교수,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강병기기자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측이 조기 도입을 추진중인 증권 집단소송제도는 재계의 반대로 갈등이 만만찮은 분야로 꼽힌다. 왼쪽부터 김석중 전경련 상무, 선우석호 홍익대 교수,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강병기기자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권인수위원회에서 내놓은 재벌개혁안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가 증권집단소송제도다.

집단소송제도의 취지는 기업투명성을 높여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는 것.

인수위측은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투명성이 확보돼 기업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설명한다.

반면 재계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기업이 내내 소송에 시달려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이 제도를 반대하고 있다.

▽선우석호 홍익대 교수=투명성과 관련해 우선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언급하고 싶다. 이는 한국 기업의 불투명성 때문에 우리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뜻한다. 어떤 보고서는 투명경영이 이뤄지면 한국 기업의 주가는 지금보다 40% 올라간다고 한다. 집단소송제 도입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견해를 먼저 설명해 달라.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현대사회의 주역은 기업이다.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에게도 중요한 과제다. 투명성과 기업경쟁력은 상충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두 가치다.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단기적으로 지배주주와 최고경영자(CEO)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투명경영은 주주와 종업원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이익이 되며 장기적이고 자발적인 헌신을 하도록 한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장기적인 투자이지 비용이 아니다.

▽김석중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집단소송제도가 글로벌스탠더드가 아니라고 본다. 미국에서만 시행되는 제도이고 그 또한 문제가 많아서 1985년과 98년, 지난해에 개정됐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은 한국도 증권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한다고 했더니 꼭 막으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실패한 제도인데 한국에서는 마치 도입만 하면 기업이 투명해지고 소액투자자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제도처럼 말한다.

▽김 소장=이 제도는 기업에는 상당한 부담이다. AMCHAM과 같은 기업 측면에서는 이 제도의 비용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이 법을 개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법개정은 집단소송제도의 존폐가 아니라 비용을 줄이는 개선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은 모두 미국 자본시장이 지금처럼 건강하게 자란 중요한 요인이 집단소송제도라고 인정했다. 이 제도가 글로벌스탠더드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시장이 통합되는 과정에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고 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줄어야 한다. 지배주주나 경영자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탈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수단이 집단소송제라는 것은 전 세계에서 합의된 것이다. 유럽에서도 공익을 위한 단체소송과는 별도로 이 제도의 도입을 적극 추진하려 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도 제도 도입을 확정했다. 한국 자본시장이 발전하려면 피해자에 대한 적정한 구제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김 상무=미국에는 우리처럼 선정당사자제도가 별도로 없다. 그래서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위해 피해자 구제 수단으로 집단소송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집단소송제 도입을 포기하고 기존의 선정당사자제도를 보완했지 않은가.

▽김 소장=지금 일본은 금융개혁이나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 우리보다 뒤떨어진 상태다. 일본이 장기적인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제도를 개혁할 내부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장기 불황의 원인인데 우리도 제도를 개혁하지 말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리의 증권집단소송법안과 미국의 집단소송제도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는 증권거래법이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배상책임을 인정해 놓은 허위공시, 분식회계, 주가조작 등 세 가지 사안에만 소송을 낼 수 있지만 미국은 모든 불특정 다수의 피해에 대해 집단소송을 낼 수 있다. 우리 법은 미국보다 훨씬 강한 남소(濫訴) 방지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김 상무=남소가 방지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감하지 않는다.

기업이 소송부담을 두려워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런 측면이 있다. 미국에서도 잘 나가는 기업들만 소송에 걸렸다. 변호사들이 돈벌이하도록 만든 제도다.

미국에 집단소송만을 전문으로 하는 법률회사들이 우리 전경련 미국지사 직원을 만나기만 하면 “한국이 언제 집단소송법을 도입하느냐”고 물어본다. 이건 실화다. 미국은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우리를 황금시장으로 보고 있다. 친한 변호사들은 집단소송제도를 시작하면 솔직하게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제도가 투명성을 높인다고 했는데 그러면 왜 미국에서 월드컴이나 엔론 같은 사태가 발생했는가. 집단소송 대상이 되는 분식회계 주가조작 등은 칼로 무를 자르듯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는 영역들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이것은 변호사들의 밥줄이 된다.

소액투자자 손해구제에도 보탬이 안 된다. 미국의 실증분석 자료를 보면 투자자에게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 대해 소송하려는 주체가 있다면 이들은 소송을 하기 전에 미리 주식을 팔 것이다. 다른 투자자는 모르는 동안 주가는 폭락한다. 소액투자자는 모르는 사이 주식을 팔지도 못하고 반토막이 되는 손해를 본다.

미국에는 소송의 95%가 판결까지 가지 않는다. 기업 이미지가 나빠지니까 협상을 한다. 미국에서는 조견표가 있는데 예를 들어 배상액이 1억달러면 통상 3000만달러로 타협을 본다. 여기서 30%를 변호사가 가지고 나머지를 소액투자자가 나눠 가진다. 소액투자자가 받는 돈은 손해액의 2% 정도다. 주가가 다 떨어지고 난 터라 보상수준은 터무니없다.소액투자자에게 손해다.

▽김 소장=사고가 어떻게 처리됐는가도 중요하지만 이 제도가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에 더 주목해야 한다. 참여연대는 이 제도가 기업 투명성의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기업이 투명하고 불투명한지, 좋고 나쁜지를 가릴 수 있어야 하고 나쁘고 불투명한 기업에는 벌을 주어야 한다. 집단소송제 없이 그렇게 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자본시장이 나빠지면 기업이 손해를 본다. 집단소송제의 최대 수혜 대상은 기업이다. 개별투자자의 손해를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본시장을 강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김 상무=자본시장 발전이 기업에 좋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미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려고 공정 공시를 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 상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시장에 유포시켜 주면 투자자가 시장에서 기업을 처벌하고 응징하는 방식이 어떤가.

▽김 소장=물론 필요하다. 공시제도 및 회계제도와 함께 소송제도가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제도는 공시 및 회계제도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각 경제 주체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 하도록 하고 불법행위로 피해를 볼 경우 손쉽게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다. 유가증권 관련 불법행위는 범법자가 얻는 부당 이익은 천문학적이지만 개개 투자자의 피해는 수백만원에 불과하다. 개별 피해자가 소송을 내서 실익이 없는 상황에서는 유효한 제재가 못 된다.

▽김 상무=집단소송제를 도입하려면 대상에 정부도 들어가야 한다. 정부가 거짓말하고 엉뚱한 짓을 하면 투자자들이 손해를 본다. 정부는 맘대로 해도 되고 대기업만 소송 당하는 것은 불평등하다.

▽선우 교수=정리하자.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피해배상제도의 존재 자체를 재계가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남소를 우려하는 것이다. 김 상무는 정보가 불균형한 상황에서 증권집단소송제도가 있다 해도 투자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례를 가지고 접근했다. 피해배상제도와 함께 공시제도 등 정보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가 같이 발전해야 자본시장이 건전해 진다.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잘 안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제도를 동시에 추진하되 남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 소장=그래서 우선 협소한 영역부터 차근차근 도입하자는 것이다.

▽김 상무=일단 도입하면 제도를 없애기 힘들다. 일본을 무시하지 말고 먼저 연구를 해보자. 일본은 지난해 제도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론 내리고 선정당사자제도를 강화하기로 했다. 나중에 소송 사실을 안 사람들을 구제하는 조치도 마련했다. (김 소장에게) 함께 공부하자.

▽김 소장=찬성이다. 중요한 제도인 만큼 정부 재계 시민단체 등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함께 공부하고 논의하자.

▽선우 교수=탁상에서만 논의할 것이 아니라 정부는 기업과 함께 선진제도를 벤치마킹해서 우리에게 적합한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제까지 정부는 기업을 도둑으로 봤다. 도둑과 함께 법을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제는 정부도 기업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함께 제도를 구축해 가는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

▽증권집단소송제도=기업이 허위공시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를 저질러 소액투자자들이 피해를 봤을 때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승소하면 나머지 피해자들도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지금은 소송을 건 사람만이 배상을 받는다.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주에서는 증권관련 불법행위를 포함한 모든 손해배상 소송에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법안이 계류중이다.

정리=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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