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의 경영과 인생]<14>'하면된다'의 한계

  • 입력 2002년 12월 29일 19시 31분


인류 문화사를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구분할 만큼 도구용 소재는 인간 삶에서 중요하다. 모든 소재는 자연에서 얻어졌기 때문에 소재를 탐구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존재양식(存在樣式)까지도 깨닫게 되었으니, 순수상태의 금속보다는 합금이 도구의 소재로서 더 유용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순수 구리의 경도(hardness)는 100(Vickers scale)이지만 구리에 10%의 주석을 섞은 합금 즉 청동은 경도가 260까지 올라가 더 좋은 소재가 된다. 이러한 자연원리로부터 인간사회에서도 혼자 일하는 사람보다 남과 손잡고 제휴하는 사람들이 더 강한 경쟁력을 형성한다는 암시를 얻을 수 있다. 철 역시 순수 상태에서는 경도가 200에 불과하여 청동보다도 약하지만 철이 탄소와 결합하면 무쇠가 되어 경도가 700을 넘어선다.

그러나 무쇠는 강한 대신 충격을 받으면 깨지기 때문에 인간은 충격에도 안전한 철을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결국 인간은 철 속에 포함된 탄소의 함량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서 철이 충격에 안전한 연성(ductility)을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철이 연성을 가지게 되면 그만큼 경도가 약해진다. 그래서 인간은 경도와 연성 사이에서 타협점을 모색해야 했고 결국 탄소함량을 2.11%로 하는 강철(steel)이 개발되었다. 자연의 이러한 존재양식으로부터 인간도 상반되는 두 가지 가치 중에서 어느 하나의 선택, 예컨대 깨끗한 공직생활로 존경을 받으려면 다른 가치, 즉 사리사욕을 포기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좀더 강하고 질긴 강철을 얻으려고 노력한 인간은 불에 달군 쇠를 망치로 두들겨서 찬물에 냉각시키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도 안일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보다 남에게 비판받고 얻어맞는 혹독한 단련 속에서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학자가 쓴 논문도 학회에 발표되어 비판받고 얻어맞아야 더욱 좋은 학설로 다듬어 진다. 철강이나 인간 모두 자연에서 나왔으니 자연 속에 존재하는 진리가 인간사회에서도 통하리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좀더 좋은 소재를 찾아 끈질긴 노력을 지속해 온 인간이 7세기에 이르러서는 쇠나 구리 같은 금속을 금으로 바꿔보려는 노력까지 시도했다. 이러한 노력을 연금술(鍊金術)이라 부르는데 연금술은 전 유럽에 전파되어 17세기 뉴턴 같은 과학자까지도 이에 가세했지만 아무도 금을 만들지는 못했다.

1000여 년에 걸친 노력이 이렇게 실패로 끝난 이유는 무엇일가? 답은 간단하다. 쇠나 구리 같은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길은 자연법칙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라디오라도 존재하지 않는 전파를 잡아낼 수는 없듯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존재하지 않는 자연법칙을 존재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끈질기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즉 ‘하면 된다’는 신념에는 한계가 있다는 경영원리가 도출된다.

‘하면 된다’는 신념은 우리나라 경제발전 초창기에 많은 기적을 탄생시켰다. 어느 건설회사는 조선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사업계획서만 가지고, 배를 사줄 선주(船主)를 찾아다니면서 선박 두 척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계약서를 근거로 영국계 보증기관과 은행을 설득, 금융지원을 받아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동시에 (앞서 수주한) 선박을 건조, 예정보다 일찍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1970년대 우리나라는 정부, 기업, 국민이 하나가 되어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불가능해 보이던 많은 일들을 성공시키면서 전 세계가 놀라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나폴레옹도 알프스에 올라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면 된다’ 혹은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과 정신력은 과학과 기술이 중요하지 않던 옛날 혹은 중진국 시절에나 통할 수 있는 방법론이지, 이런 생각으로 21세기를 살아갈 수는 없다. 과학과 기술이 주요 경쟁무기가 되어 있는 21세기를 살아갈 방법론은 ‘하면 된다’는 신념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다음 글에서 살펴보자.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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