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 경제계 움직임]"시대변화 맞게 변신을"

  • 입력 2002년 12월 25일 18시 38분



대통령 선거 이후 경제계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총수의 2, 3세 승계를 늦추는 등 몸을 사리고 있다. 25일 대기업과 금융권에 따르면 노무현(盧武鉉) 당선자의 등장 이후 대기업들은 잇따른 사장단회의, 임원회의 등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세대교체론’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이들은 특히 ‘재벌개혁’과 ‘분배’를 강조하는 노 당선자의 공약이 어떻게 실천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대선에서 나타난 20, 30대의 힘과 ‘돌이킬 수 없는 시대 변화’가 거론되면서 기업도 고객 눈높이에 맞춰 변신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기업의 몸사리기〓총수들의 2, 3세 후계 구도는 일단 미뤄질 전망. 현대자동차의 한 임원은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鄭義宣) 전무가 바로 부사장으로 승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기업 대물림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새 정권에 정면도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李在鎔) 상무보 역시 상무로 승진하는 선에서 그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어느 그룹의 임원은 “2004년 총선까지 기업은 납작 엎드려 사태를 관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마저 ‘경기 진작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라는 외피를 쓰고 이뤄지는 양상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국내외 경기가 불투명한 가운데서도 내년도 시설투자를 올해보다 35% 늘린 8조8000억원으로 잡았다. 삼성측은 “기업의 글로벌 경쟁 우위 확보는 물론이고 경기 활성화를 위해 시설투자를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곧 새해 경영계획을 발표할 LG그룹도 내년 시설투자를 올해의 5조4000억원 이상으로, 연구개발비는 크게 늘리는 방향으로 잡았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있고 해서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긴장하는 경제단체들〓새 정부 출범과 거의 같은 시기에 회장 임기가 끝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등의 경제단체들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새 정부가 재벌개혁, 증권 집단소송제, 주5일 근무제 등을 추진할 경우 이에 반대하는 경제계를 대표해 총대를 메야 하기 때문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새 회장이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동안 후보로 거론되던 기업 회장들이 모두 강력히 고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내년 3월 총회에서 회장을 선출하는 대한상의는 그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박용성(朴容晟) 회장의 연임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무역협회 역시 동북아 중심국가로의 도약을 주장해온 김재철(金在哲) 회장이 유임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 인사에도 영향〓기업들은 대선이 끝난 후 잇따라 임원인사를 하고 있다. 기업 인사에서는 40대 젊은 임원들의 발탁 추세가 두드러질 전망. 대선 직후 젊은 임원들을 대거 승진시킨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세대교체는 시대의 요청”이라고 말했으며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권의 참모진이 젊기 때문에 파트너가 될 경영자와 임원들도 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별 기상도〓정부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의 기업들은 누가 장관이 될지,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정몽준(鄭夢準)씨가 대주주인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은 주변 전문가들에게 기업의 미래에 대해 묻는 등 침체한 분위기.

건설업계는 주택시장 안정 대책이 계속되리라고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개성공단 건설 등이 당장 호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융권은 조흥은행 매각 등 기존 정책이 차기 정부에서도 이어지리라는 관측이 많다. 통화정책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증권가에서는 대선이 끝나면 불확실성이 없어져 주가가 오르리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막상 노 당선자가 말을 아끼며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대선후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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