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미국식 자본주의 반성?"

  • 입력 2002년 12월 23일 18시 00분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일까?

뉴욕 월가에서 ‘민간자율 제일주의’와 길을 달리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20일(이하 현지시간) 뉴욕 주정부는 ‘거래기업에 대해 ‘무조건 좋다’는 투자 의견을 내 일반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투자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로 조사를 벌여온 살로먼스미스바니 메릴린치 등 세계적인 투자은행 10곳과 협상을 벌여 ‘형사 처벌을 하지 않는 대신 종전의 관행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이에 앞서 코카콜라는 13일 “앞으로 다음 분기 실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공표하지 않겠다”고 밝혀 월가를 뜨겁게 달궜다.

두 사례는 엔론사건으로 시작된 ‘규제를 통한 공정성 확보’ 논의가 시장에서 실제로 집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간 만능에서 사회적 책임으로〓뉴욕 주정부와 투자은행들 간의 신사협정은 월가에서 낯선 내용. 투자은행들은 형사 처벌을 면하는 조건으로 모두 14억달러의 벌금을 내고 거래기업 임원들에게 신규상장된 주식을 뇌물로 주는 관행을 버리기로 했다.

놀라운 것은 투자은행들이 앞으로 5년간 독립적인 리서치 기관들에 4억5000만달러를 기부하고 투자자 교육 프로그램에 8500만달러를 대기로 한 점. ‘돈 되는 곳에만 돈을 쓴다’는 미국식 관행을 벗어난 것.

투자은행들은 또 리서치 부문을 영업 부문과 별도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감독당국이 주도한 여론몰이에 몰려 당장 돈벌이가 안 되는 공룡 같은 리서치센터를 유지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근시안에서 장기 시야로〓주가가 분기 실적을 시시각각 반영하면서 주가가 오르는 능력 있는 기업에 투자자금을 배분하는 금융시스템이 미국 경제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실적은 ‘애널리스트 실적 전망→애널리스트 실적 추정→해당 회사의 실적 고백→실적 확정치 발표’ 등 다단계로 공개되면서 주가가 펀더멘털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이끌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투기분위기를 조장, 주가 폭등과 폭락을 가져왔다. 나아가 기업들이 분기 실적을 억지로 꿰맞추는 회계조작을 부추겼다.

질레트 워싱턴포스트에 뒤이은 코카콜라의 결단은 근시안적 투기에 장단을 맞춰서는 장기 투자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없다는 자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적절한 규제 있어야〓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금융시장은 항상 정보의 비대칭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놔두면 불공정 거래나 금융위기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적절한 규제가 없으면 시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말. 한 증권시장 연구자는 “공정공시제가 정착하도록 감독당국이 철저한 감시를 펴고 독립 리서치 기관 활성화 방안도 도입할 만하다”고 말했다.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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