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2002]워크아웃 졸업 '영창악기'

  • 입력 2002년 11월 25일 18시 16분


영창악기 직원들이 회사 재기를 자축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제공 영창악기
영창악기 직원들이 회사 재기를 자축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사진제공 영창악기
《인천 서구 가좌동 영창악기 공장 내 정음(淨音)실. 새로 생산된 피아노의 음색을 마지막으로 다듬는 이곳에서 경력 15년째인 임재동씨(40)가 피아노 건반을 세게, 때로는 약하게 두드려댔다. 이미 조율된 완성품이었지만 아직 불만스러운 부분이 남아 있는 듯 임씨는 피아노 줄을 두드리는 ‘헤드’ 부분을 조심스럽게 다듬기 시작했다.》

건반 음의 깊이를 한 차원 높이기 위한 마무리 손질이었다.

“조율이나 조정은 전자식 튜닝기기를 사용하지만 정음은 오직 전문가의 귀에 의존합니다. 영창의 정음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옆 건물에선 피아노의 품질을 좌우하는 향판 제작이 한창이었다. 향판은 피아노 건반 음의 울림판의 역할을 하는 목재판.

“곧고 일정한 방향으로 결이 난 목재만 향판으로 씁니다. 그래야 음질이 고르고 습기나 진동에도 오랫동안 변치 않습니다.”

이재경 홍보파트장은 향판 소재로 미국 알래스카의 시트카 가문비나무만 고집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창악기는 연간 14만대의 피아노를 생산하며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1위의 피아노사(社)로 명성을 날렸다. 상업광고에 출연하지 않던 오스트리아 빈 소년합창단이 흔쾌히 영창 광고에 응한 것도 이 무렵.

하지만 해외투자 확대에 나섰던 98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영창은 그해 9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리고 뼈를 깎는 46개월이 흘렀다. 직원 2120명을 1036명으로 줄이고 국내 공장 2곳과 유휴 부동산, 미국 공장, 해외 판매법인, 기계설비 등을 팔았다. 하지만 품질에 대한 고집만은 버리지 않았다.

90년 인수한 미국 전자악기업체 ‘커즈와일’의 제품을 발전시킨 덕분에 99년과 지난해 미국 전자악기 전문잡지로부터 ‘올해의 기술혁신상’을 수상했다. 올 6월엔 천안대와 공동으로 전자악기를 개발하는 디지털 음향연구소를 세웠다. 올해 초부터 피아노 제조공정마다 생산책임자 실명제를 도입했고 품질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경쟁업체인 삼익악기와의 공장 견학 교류 등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재룡(金載龍) 사장은 직원들을 독려하면서도 매달 팀장급 직원 120여명을 대상으로 회사 경영설명회를 열고 투명경영에 나선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영창은 마침내 6월 30일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하지만 세계 악기시장의 규모가 계속 줄고 있어 긴장감을 조금도 늦출 수 없다. 그래서 고급화, 브랜드 세분화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판매가가 최고 1억원에 이르는 최고급 시장에선 ‘프렘버거’, 그 아래 고급 시장은 ‘웨버’, 중고급 시장은 ‘영창’, 중저급 시장은 ‘버그만’으로 브랜드를 다양화했다.

특히 세계 1위 독일 스타인웨어사(社)의 피아노 설계자 요제프 프렘버거를 영입해 만든 프렘버거 피아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최남길(崔南吉) 상무는 “앞으로 프렘버거의 매출액을 전체 20%까지 끌어올리고 품질에 승부를 건다면 영창악기의 ‘맑은 소리, 고운 소리’는 영원히 퍼져나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인천〓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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