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월드]현대·기아 디자인실장 "수백일간 수천장 스케치합니

  • 입력 2002년 11월 25일 17시 17분


김영일 이사
김영일 이사
“일반인들에게 컨셉트카(Concept Car)는 구경거리이지만 우리에겐 소중한 자식들입니다.”

현대·기아자동차 디자인1실장을 맡고 있는 김영일(金永一) 이사는 컨셉트카를 ‘아들, 딸’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도 ‘매번 난산(難産) 끝에 나온 애들’이라고 강조한다.

컨셉트카 한 대를 만들기 위해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수백 일간 수천 장의 스케치를 한다는 걸 고려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홍익대 미대와 영국 스포츠카 디자인회사를 거친 김 이사는 현대차에 입사해 그동안 컨셉트카 HCD시리즈 개발의 실무를 맡아왔다.

“컨셉트카 개발은 보통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립니다. 이 기간 중 스케치 기간이 6개월 이상을 차지하죠.”

산더미 같은 폐지(廢紙·실패한 스케치) 속에서 나온 최종 스케치는 컴퓨터를 이용한 입체화 과정과 4분의 1크기의 모형 제작 과정 등을 거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진짜 자동차로 태어난다.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미래 자동차의 모습을 담은 새로운 컨셉트를 찾는 일이다.

그는 고민하는 동료들에게 ‘아이디어는 머리에서가 아니라 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차문을 열거나 운전을 하는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해야 그들의 숨겨진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 또 사회를 뒤흔드는 각종 사건을 신문이나 잡지에서 읽어야 이 시대 소비자들의 심리를 알게 된다.

김 이사는 이어 컨셉트카 제작을 자동차회사와 소비자들간의 대화라고 정의했다. 소비자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통해 자동차회사에 디자인 아이디어를 주고, 회사는 이 아이디어로 컨셉트카를 만든다. 소비자는 다시 이 컨셉트카를 평가하고 회사는 새로운 컨셉트카를 내놓는다.

“사람도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해야 친해지잖아요. 자동차회사들은 컨셉트카를 자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계속 얘기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국내 자동차회사들이 컨셉트카와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현대차는 1990년대 초 만해도 디자인 부서장을 부장급으로 임명했다. 지금의 부사장급으로 격상시킨 것은 2000년 이후이다.

김 이사는 최근 미국 Y세대(10∼20대)들을 겨냥한 새로운 컨셉트카를 제작 중이다.

“완전히 마음에 드는 놈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요. 멋진 놈을 낳아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요.”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의 2002 서울모터쇼 행사장을 찾은 그는 막내아들인 컨셉트카 HIC를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표정에 눈을 떼지 못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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