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경제포럼 경기진단 좌담회]"내년 더 어렵다"

  • 입력 2002년 10월 31일 19시 00분


사진 왼쪽부터 정문건 전무, 심상달 연구위원, 박원암 교수.-이훈구기자
사진 왼쪽부터 정문건 전무, 심상달 연구위원, 박원암 교수.-이훈구기자
‘동아경제’는 경제 현안을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동아경제포럼’을 열어 매월 1일자에 싣기로 했다. 첫 포럼에서는 국내외 경기를 전망해보는 좌담을 마련했다. 현재 한국경제의 상황은 어떻고 앞으로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칠 해외 요인들은

어떻게 변할까.

정부 기업 가계 등 각 경제 주체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참석자들은 국내 부문에선 경기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내수(內需)가 둔화되는 조짐이 뚜렷하고 해외 부문에선 대(對)이라크 전쟁 가능성과 미국경제 회복 지연 등 불확실한 요소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좌담회는 30일 오전 본사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편집자 주>

▽사회〓통계청이 2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월 산업활동이 저조하고 민간 소비심리도 많이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편으로는 국내 주가가 미국 다우지수에 좌우되는 등 해외 변수의 영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내년 세계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는지요.

▽심상달 선임연구위원〓내년 해외경제는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봅니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가능성, 미국 경제의 침체 등 불확실한 요인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실제로 일어나면 불확실성은 사라질 것입니다. 유가도 큰 충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실물 부문에서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비중이 커지고 있어 미국 등 선진국의 상황이 나빠져도 충격을 흡수할 장치들이 많아진 셈입니다.

▽정문건 전무〓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지요. 미국과 이라크간 전쟁이 일어나면 국제유가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미국의 관변 연구소에선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을 3∼4%로 보고 있지만 민간연구소에선 3% 미만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원암 교수〓올해 해외여건이 좋지 않았는데 내년에 갑자기 좋아질 수는 없지요. 미국 경기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이 같은 해외 악재와 내수 둔화를 감안해 연구기관들이 내년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5%대 초반으로 낮춰 전망하는 것이지요. 일부 해외요인이 좋아지더라도 한국경제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달러 약세 등 악재가 널려 있어요.

▽사회〓일각에서는 미국의 자산거품이 꺼지면서 소비가 줄어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박〓미국의 가장 큰 불안요인은 더블딥(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이다 다시 침체로 돌아서는 이중침체현상)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미국 경제는 4·4분기(10∼12월)가 3·4분기보다 더 나빠질 것입니다. 내년 미국 경제는 3% 정도의 성장세를 보이겠지만 불확실성이 매우 큰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중국도 디플레 요인이 있고요.

▽심〓9·11테러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려는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등 세계적 정책공조 메커니즘이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엔론사태 등으로 미국 경제가 신뢰도에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투명한 사회입니다. 오히려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엄청난 무역적자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 제도나 시스템에 대한 우려는 아니라고 봅니다.

▽정〓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의 경우 올해 정보기술(IT) 산업의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봤는데 시설 과잉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잘해야 내년 하반기에나 살아날 것입니다. 올 하반기 들어 소비 위주의 경기부양은 미국으로서도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이라크 전쟁 변수까지 겹치면 성장률이 생각보다 낮아질 수도 있어요. 일본과 유럽연합(EU)도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 없어요. 더욱이 주요국 지도자들간의 정책공조마저 없다 보니 세계적인 디플레가 우려되는 것이지요.

▽박〓세계적 차원에서 거시경제 협조가 미비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이 독주하는 상황에서 미국 경제가 나쁘면 일본이나 EU가 받쳐줘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못 됩니다. 미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경우 이에 대응할 국제적 장치가 없다는 게 문제지요.

▽심〓세계적 디플레이션이 온다면 미국은 환율을 조정할 것입니다. 금융의 세계화가 이뤄졌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극단으로 가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미국의 소비심리 하락은 주가하락에 따른 것입니다. 각국이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 만큼 사전에 대처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심 위원이 몸담고 계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5.3%로 전망했더군요. 현장에서는 체감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현재의 한국 경제를 진단해보도록 하지요.

▽심〓현재 국내경기는 완만한 상승국면 또는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9월 중 소비와 생산, 공장가동률이 줄어든 것은 추석이 끼어 있어 조업 일수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소비하락에는 주가하락의 영향도 있고요. 하지만 주가가 다시 오르고 있어 10월에는 나아질 것입니다. 수출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조업일수가 줄어 경제지표가 나빠지는 ‘추석 효과’는 분명히 있습니다. 또 경기가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내수는 분명히 줄어들고 있고 이를 수출이 메워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3·4분기 수출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7, 8월 수출증가율이 높은 것은 지난해 7, 8월이 워낙 나빴기 때문이지요. 반도체가 주요 변수인데 세계적으로 수요가 줄어 내년 연초 이후 반도체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경제가 디플레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정체나 둔화는 각오해야 합니다.

▽박〓올해 6%대 성장률이 내년에는 5% 초반이 될 것입니다. 내수는 이미 한계에 왔고 경상수지도 좋지 않습니다. 내수는 그동안의 가계대출 확대, 신용카드 부실 증가, 부동산거품 등으로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내년 소비는 정점에 이르고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으로 건설경기는 위축될 것입니다. 수출도 세계경제의 불확실 요인 때문에 내수 부문의 둔화를 상쇄할 만큼은 안 될 것입니다. 성장률이 4%대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심〓사실 5%대 성장률은 낮은 것이 아닙니다. 내년처럼 어려움이 예상되는 시기에 5%대 성장이면 만족할 만합니다.

▽정〓수출이 괜찮다고 하지만 현재 월 130억달러 정도 수출하고 있습니다. 한창 수출이 좋았을 때는 보통 월 150억∼160억달러 정도 수출했지요. 그런데도 지난해 수출이 워낙 나빠 올해 증가율은 10% 이상입니다. 내수가 정점에 다다른 상태에서 대외여건이 어려워지면 경제성장률은 생각보다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사회〓해외요인에 대해 심 위원이 약간 낙관적인 데 비해 정 전무께선 상대적으로 비관적인 것 같습니다. 국내 경제에 대한 해외요인의 영향력이 워낙 커져 다양한 해석이 나온 듯합니다. 주제를 바꿔 국내의 경제 불안요인을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최근 논의되는 국내 불안요인은 다소 부풀려졌다고 봅니다. 가계대출의 경우 대출금액은 5년 전에 비해 두 배 늘었지만 금리가 연 13∼14%에서 연 7∼8%로 떨어졌기 때문에 가계부담은 마찬가지입니다. 집값 상승도 불과 2, 3년 사이에 일어난 일로 일본의 자산가치 붕괴와 비교할 것은 아니지요. 외환보유액도 충분해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박〓위기설은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비관론적 시각에서 보면 국내적으로도 불안요인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가지수가 600대에 머무르는 것이지요. 은행은 가계대출 담보가액의 60%만 대출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실상은 모릅니다. 신용카드 사용자 10명 중 1명이 신용부실이라는 점도 심각한 문제고요. 기업의 잠재부실이 30조원뿐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노동 부문, 공공 부문의 개혁 부진도 걸림돌이에요.

▽심〓국내경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현 정부의 공공 부문 개혁이 미진했고 구조조정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영평가기관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도 한국의 정부 부문에 대해 상당히 개선됐다고 평가하고 있어요.

▽사회〓현 시점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요. 또 곧 들어설 차기정부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박〓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안정입니다. 주가지수가 500 이하로 떨어지면 비상경제대책기구라도 만들어서 위기관리를 해야 합니다. 경제안정은 여야를 떠나서 공동으로 협력해야지요.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고용안정, 성장기반 확충, 5%대 안정성장의 유지라고 봅니다.

▽정〓거시경제 운용이 세계적으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금리도 그렇고 경제지표도 불규칙하게 움직이거든요. 따라서 거시정책은 중립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차기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의 개혁정책들을 마무리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정책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생존전략을 짜야겠지요.

▽심〓거시정책은 지금과 크게 바꿀 것이 없습니다. 금리는 신축적으로 운영하고 재정은 지금처럼 중립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 정부가 선거를 맞아 부양정책을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차기 정부는 경제를 비교적 좋은 상태로 물려받는 만큼 서두르지 말고 중장기적으로 하나씩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심상달 전무▼

△1950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 박사

△뉴욕시립대 조교수

△경제부총리 자문관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팀장

△현 KDI 선임연구위원

▼정문건 전무▼

△1952년생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미국 밴더빌트대 경제학 박사

△경제기획원 자문위원

△현 삼성경제연구소 경제동향실장(전무)

▼박원암 교수▼

△1953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MIT대 경제학 박사

△KDI 연구위원

△비상경제대책위 자문위원

△현 홍익대 경영대학 무역학과 교수

정리〓임규진기자 mhjh@donga.com

김광현기자 kk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