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특집/레노마 디자인팀 24시]"수영복 디자이너 몸매는 기본"

  • 입력 2002년 7월 3일 16시 17분


박혜경 계장이 '스리 피스' 형태의 수영복을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박영대기자]
박혜경 계장이 '스리 피스' 형태의 수영복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박영대기자]
《어수선하다. 올해 여름 상품으로 선보인 수백벌의 수영복은 물론이고 내년 봄·여름 시즌용 원단에 대한 자료와 샘플도 벌써 눈에 띈다.

우인실업은 1996년 프랑스 ‘레노마’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레노마 수영복을 디자인·생산·판매 수출하고 있다. 레노마 디자인팀에는 정희경 디자인 실장을 비롯, 6명의 수영복 디자이너가 피서지 패션의 흐름을 잡는다.

수영복 디자인 경력 7년째로 지난해부터 디자인 실장을 맡아오고 있는 정 실장은 입사 이후 수영을 배웠다. 체형별로 수영복이 어떻게 보이는지 보기 위해서다. 수영복은 보통의 의류와는 달리 쭉쭉 늘어나는 소재를 쓰기 때문에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막상 입어보는 것이 크게 다를 때가 많다.

정 실장은 “수영장에서 사람을 유심히 보는 것은 다소 ‘민망’한 일이기도 하지만 ‘음흉’한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다”며 웃는다. 자신이 디자인한 수영복을 입은 사람을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기도 한다. 무늬나 색상 등에 대해 전문가적 조언을 하는 사람부터 그저 웃고 지나가는 사람까지 반응은 다양하다. 》

디자인 과정에서는 본인이 샘플을 많이 입어봐야 한다. 입은 모양을 거울로 보고 수시로 교정을 한다. 최근 막내 디자이너를 1명 채용했는데 인터넷 공고만 했는데도 지원자가 ‘구름같이’ 모였다. 채용 기준은 물론 디자인 실력이나 컴퓨터의 디자인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 등이 중요하게 고려되지만, ‘몸매’가 받쳐 줘야 한다. 수시로 수영복을 입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 해 여름 시즌에 보통 120여종의 디자인이 매장에 나온다. 사내 품평회를 거친 300여종의 샘플 중 최종적으로 상품화에 들어간 것들이다. 디자인실에서 나오는 스케치는 1년에 500여 스타일가량. 하나의 디자인이 상품으로 매장에 선보이려면 적어도 5 대 1가량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셈이다.

사내 정기 품평회는 1년에 2번. 통상 다음해 여름 시즌 디자인은 그 이전해 10월에 확정이 되고, 가을 시즌 디자인은 그해 3월에 확정이 된다. 해외 출장은 1년에 4회가량 나간다. 매년 8월과 1월에 리옹과 몬테카를로에서 있는 수입 소재 전시회를 통해 그 해와 이듬해 쓰이게 될 원단을 고른다. 최근에는 수영복이 3피스, 4피스 등 일반 의류 개념이 도입되는 추세여서 여성복 패션 전시회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다.

비키니 수영복에 치마와 바지, 민소매 티셔츠 등을 겹쳐 입는 스타일이 2000년 이후 유행하면서 비키니 수영복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비키니는 브래지어와 팬티뿐이었고, 이는 ‘몸매에 자신있는 여성의 과시용’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다양한 단품으로 체형을 보정할 수 있게 됐다.

'여름 해변 멋쟁이 만들기는 우리 손에.' 레노마 수영복을 만드는 우인실업의 디자인팀. 뒷줄 맨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송지연 이은옥 황형숙 김민기 박혜경 정희경씨. [사진=박영대기자]

일반 의류의 개념을 도입하더라도 수영복은 수영복이기 때문에 고려할 것이 많다. 물에 들어갔다가 바로 햇빛에 노출시켜도 소재가 손상되지 않아야 하고, 너무 헐렁하게 디자인하지 않아야 하는 등 디자인에 제약 조건이 많은 편이다. ‘신참’ 시절에는 각 원단의 특징 등 온갖 전문적인 용어와 디자인의 조건들을 달달 외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디자이너의 세계에 상하 위계 질서가 비교적 엄격한 이유 중 하나다. 한동안은 연차가 낮으면 틀림없이 고참보다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이 적다.

제약 조건 하에서 ‘창조’적인 디자인을 짜내려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번개치듯 영감이 떠올라 창조적인 디자인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공부, 시장 조사 등 발로 뛰는 ‘정석’에서 오히려 창조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바쁜 와중에서도 여름 휴가는 ‘반드시’ 챙겨서 간다. 여름 휴가만큼 좋은 시장 조사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아예 디자인팀 전원이 단체로 ‘휴가 아닌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2000년 여름. 망사를 겹으로 싼 수영복을 목걸이와 함께 코디해 디자인한 제품이 대 히트를 쳤다. 다소 파격적인 디자인이어서 반응에 대한 사내 예측이 엇갈렸었는데 결과가 좋았다. ‘이 맛에 산다’ 싶을 때다. 물론 그런 ‘사는 맛’이 없을 때도 있다. 몇 년 전에 금속성 빛이 가미된 제품을 디자인 한 적이 있었다. 사내 품평회의 반응은 좋았지만 판매는 거의 안됐다. 소비자들이 ‘저 수영복 이쁘다’고 말하긴 하지만 막상 자신이 입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대담한 디자인이었던 것.

가을 겨울에도 해외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져 가을 겨울용으로도 해변 스타일 수영복을 디자인한다.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수영복 매출의 80%는 여름에 일어났지만 최근 연중 고르게 매출이 확대되는 추세다.

디자이너들도 1년에 3, 4일씩 매장에서 판매근무를 한다.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며 ‘감’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판매를 하다보면 자신의 체형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고르는 소비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다리가 굵으면 반바지 스타일보다는 양 옆이 파인 것이 어울리고, 가슴이 빈약하면 볼륨 패드가 있는 것을 고르는 등 조목조목 따져보는 것이 좋다.

최근 국내 수영복 제조업체들은 단순히 해외브랜드의 주문자상표 부착 방식으로 제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디자인을 해 수출하는 방식이 많다. 앞으로 국내 시장뿐 아니라 ‘디자인’을 포함한 고부가가치 수출 시장을 열어나가는 것이 우인실업 디자인팀의 목표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