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김순응/유능한 보스, 무능한 보스

  • 입력 2002년 3월 8일 18시 09분


“내가 결근하는 건 죽을 정도로 아파서 그런 거고 아랫놈이 결근하는 건 두통 정도의 꾀병으로 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다.” “내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건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사안에 관해 사색하는 거지만 아랫놈이 멍하니 있는 건 할 일이 없어서다.” “내가 결론을 늦게 내리는 건 신중하기 때문이지만 아랫놈이 미적거리는 건 우유부단해서이다.”

이건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아전인수를 직장 내의 상하 관계에 확장해 본 얘기지만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닐 게다. 많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 보스들이 지니고 있는 아랫사람들에 관한 편견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의 좌우명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내 주위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읽고 무릎을 친 적이 있다. 같은 맥락의 얘기지만 시스코의 존 챔버스 회장의 모토가 ‘나도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었음을 읽었다. 그들의 겸손함과 열린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의 보스들은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가차없이 쳐버린다. 측근에 ‘예스맨’만 거느리고 그들의 달콤한 말에 빠져 지존의 제왕처럼 군림하고 희희낙락한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에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놈은 역적이요, 토를 다는 놈은 불만분자다.

얼마나 많은 부하들이 이런 보스들 밑에서 ‘화병’에 신음하고 있고, 이런 보스들을 안주 삼아 폭탄주를 돌리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독선적이고 강압적인 보스들 밑에서 생각 있는 사람들은 ‘절’을 떠나거나 숨을 죽이고 있으며 간신배들만 앵무새처럼 보스가 하는 말을 흉내내며 머리를 조아리는 사이에 조직은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보스를 위해 일하는 것과 조직을 위해 일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시대가 바뀌었다. 바람직하게도 요즈음 젊은 세대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그런 만큼 창의적이고 아이디어가 많다.

무작정 밀어붙인다고 생산성이 올라갈 만큼 단순한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는 지식중심의 정보사회가 됐다.

세계 최대의 제조업 대국인 일본의 몰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폭적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일본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월 17일자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가 일본 경제의 불황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을 한 바 있다. 일본의 야쿠자와 관련된 천문학적 금융권 부실채권이 일본의 불황(소위 Yakuza Recession)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내에서 잇따라 조폭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 적이 있다. ‘하라면 한다’는 식의 시대역행적 조폭 신드롬이 우리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심히 두렵다.

우리의 보스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빌 게이츠나 존 챔버스 같이 요상한(?) 좌우명을 가진 보스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지식이 자본과 노동을 대체해 가는 21세기에는 카리스마가 없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설파한 피터 드러커의 지혜가 절실하다.

김순응 서울옥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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