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JOB]외국기업엔 ‘7가지 환상’이…

  • 입력 2002년 3월 3일 17시 18분


다국적 소비재업체 A사에 다니는 B씨(26·여). 대학 동창들은 “연봉이나 근무여건이 좋은 외국기업에 다니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부러워한다. 특히 여대생들은 남녀차별이 없어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외국기업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그러나 B씨는 3년 동안 일하면서 ‘상식적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최근엔 몇몇 남자 상사가 “여직원들이 외모에 신경 좀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하는 것을 듣고 기분이 상했다. B씨는 “외국기업이라 해서 모두 한국기업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며 ‘외국기업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말라고 귀띔했다.

▽외국회사 직원은 외국어를 잘한다?〓한국에 진출하는 외국기업이 급증하면서 외국기업의 풍속도도 달라지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1997년 말 4419개에서 지난해 말에는 1만1515개로 4년 동안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외국기업에 고용된 직원 수도 97년 말 15만명 수준에서 99년 말엔 20여만명으로 급증했다.

외국기업에서 일하려면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99년 미국계 소프트웨어 업체에 입사한 김대원씨(29)는 토익 700점대로 썩 좋은 점수는 아니다. 입사 당시 미국인 사장이 출장 중이어서 영어 면접도 보지 않았다. 김씨는 “본사와 직접 연락을 하는 임직원 이외엔 영어를 특별히 잘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현지화를 추구하면서 외국회사의 경영진이 한국인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아졌다. BMW와 후지제록스PPK 등 많은 외국계 회사들이 몇 년 사이 한국인 대표를 등용했다. 소니 오라클 IBM 등의 한국대표도 한국인이다.

▽상사와 연줄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외국기업에서는 오직 능력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다국적기업에 다니는 한 간부는 오랜 외국계기업에서 터득한 회사생활의 기본원칙을 ‘Don’t outshine your boss(상사보다 더 빛나려고 하지 마라)’라고 전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것으로 알려진 외국기업에서도 상하관계는 분명하며 상사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고 독불장군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설명이다.

볼보코리아 이진오 부장은 “외국기업은 상사가 인사고과의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어 일단 찍히면 결국 회사를 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지연 학연 혈연 등이 필요 없다는 것도 안이한 생각. 입사할 때 같은 평점을 받았다면 사회적 배경이 좋은 사람이 우선 채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얼마 전 세계적인 회계 컨설팅업체 아서앤더슨에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실력자들의 자녀가 대거 취업한 사실이 화제가 된 것이 그 사례다.

▽연봉이 많고 근무여건도 편하다?〓지난달 말 월간 리크루트가 102개 외국기업의 대졸 연봉초임을 조사해보니 평균 2153만원으로 나타났다. 2500만∼3000만원인 SK텔레콤이나 은행 카드사 등의 대졸초임보다는 낮은 수준.

‘칼 퇴근’한다는 고정관념은 어떨까. 대리나 일반사원 등 실무자들은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퇴근할 수 있다. 그러나 팀장 이상 매니저급으로 승진하면 정규 근무시간이 끝났다고 집에 가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김정수 이사는 국내 기업에 다닐 때만 해도 서양인들이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것을 보고 ‘폼잡는 것’ 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정작 외국기업으로 옮기고 보니 오전 8시 반부터 밤늦게 퇴근할 때까지 제대로 밥 먹을 시간이 없어졌다고 전한다. 올해 신정과 설 연휴 때도 새해 계획 등을 짜느라 거의 매일 회사에 나왔다.

‘외국회사의 안정성’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외국기업은 해고가 자유로운 데다 채산이 안 맞으면 한국에서 쉽게 철수해 고용이 불안하다. 다국적기업의 K부장은 “외국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항상 인력시장에 나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헤드헌팅 업체 엔터웨이의 박운영 이사는 “외국기업은 업무 구분이 엄격해 승진이나 경력 관리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직장을 선택할 때 당장의 근무여건은 물론, 장래 진로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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