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뚫린 공적자금 관리실태]불실대출등 “눈먼돈 먹고 보자”

  • 입력 2001년 11월 23일 17시 41분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공적자금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고 무너진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150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투입했지만 일부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기관을 부실화시킨 대주주나 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지원받은 부실기업 경영자가 빼돌린 재산을 미국처럼 끝까지 추적해 받아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는 공적자금〓경기 파주의 파주신협은 이달 초 고객돈 150억원으로 주식투자를 하다 손해를 보고 파산 위기에 빠졌다. 파주신협이 파산하면 1200억원에 이르는 예금의 상당부분을 공적자금으로 대신 물어줘야 한다.

공적자금 회수업무를 하는 자산관리공사 직원 9명은 24억2700만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여기에 금융사고로 인한 피해액은 올 상반기에만 1200억원에 이른다. 민주당 정세균(丁世均) 의원은 99년부터 올 6월까지 금융사고액이 59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는데 이 중 상당액이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빛은행(1344억원)과 서울은행(283억원)에서 발생했다.

공적자금이 10조원이나 투입된 한빛은행에서는 직원이 104억원을 횡령해 달아나기도 했으며 대한생명에서도 직원 7명이 45억원을 빼돌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적자금을 받은 부실 금융기관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사전·사후관리 제대로 해야〓공적자금이 일부 낭비되는 이유는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부실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은 데다 돈을 넣은 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

금융연구원 이동걸(李東傑) 연구위원은 “미국에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예금보험공사 미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정리신탁공사(RTC) 등이 합동으로 부실책임자를 가려내 그들이 빼돌린 재산을 철저하게 추징한다”며 “한국에서는 부실 책임을 따지지 않고 돈을 쏟아부어 재산은닉과 금융사고를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보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은 뒤 파산했거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30개 회사의 전현직 임직원에 대해 내년 말까지 재산 빼돌리기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예보 단독으로 조사를 하는 데다 관련자들이 대부분 현직을 떠났고 관련 서류도 찾기 힘들어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예보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분기별로 경영상태를 점검하는 등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CEO)가 경영정상화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행태를 벌이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후관리도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회수도 지지부진〓9월 말까지 회수된 공적자금은 36조7000억원. 회수율은 24.7%. 물론 공적자금은 외환위기 이후 붕괴한 금융시스템을 살리기 위한 응급조치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100% 회수를 전제로 한 돈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회수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사후관리를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공적자금을 제대로 회수하려면 자금이 투입된 은행을 민영화하고 대한생명 등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헐값매각 시비’에 휩싸일 것을 우려해 이마저도 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년부터 갚아야 할 공적자금 이자만 해도 42조2000억원이나 된다.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원리금을 갚기 위해 세금을 더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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