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美기업도,한국경제팀도,증권사도…안되면 "라덴 탓"

  • 입력 2001년 10월 9일 18시 39분


미국의 상당수 기업들이 실적악화의 원인을 오사마 빈 라덴 탓으로 돌리는 ‘오사마 알리바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부와 몇몇 금융기관들이 미국 테러사태를 계기로 경제전망을 일제히 낮추는 등 빈 라덴을 핑계로 활용(?)하기도 했다.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IHT)지는 9일 AOL-타임워너가 올해 실적 예상치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9·11 테러’ 탓을 들면서 많은 기업들이 이 전략(?)을 따라하고 정치인들도 이를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IHT는 ‘9·11 테러’ 이전에도 광고시장 불황으로 경영압박을 겪고 있던 AOL 타임워너가 ‘오사마 핑계’를 댄 이후 이제는 ‘모든 변명의 어머니’가 됐다고 꼬집었다. 이는 마치 “숙제 해놓은 것을 개가 먹어버렸다”고 둘러대는 학생들 못지 않다는 것이다.

AOL 타임워너에 이어 지금까지 한번도 이익을 내지 못한 아마존닷컴이 지난 분기에 이익을 낼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원인을 빈 라덴에게 돌렸고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200명 이상을 감원하면서 “9월 11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지”라며 둘러댔다.

소프트웨어업체인 선가드데이터시스템과 노인용 혈전용해제를 만드는 제약업체, 슈퍼마켓체인인 윈 딕시스토어도 경영부진의 원인을 한결같이 빈 라덴에게 돌렸다. 공화당은 자본이득세 경감안을, 민주당은 저소득층 세금환급안을 추진하는 데 빈 라덴을 활용한다는 것.

국내에서도 최근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미국 테러사태로 우리 경기회복 시기도 최소한 6개월 정도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 총리는 테러 직전만 해도 연말에는 국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경제전문가는 “테러가 없었더라도 경제는 내리막길이었다”며 “테러사건이 현 경제팀을 구해줬다”고 비꼬았다.

또 일부 증권사들은 테러 전에 공표했던 비교적 낙관적인 경제전망을 테러 직후에 기다렸다는 듯이 낮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빈 라덴이 적지 않은 증권사 직원들에게 퇴로를 열어주었다”고 비꼬았다.

<이진기자>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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