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號 살려낼 비전을"…재계 "구조조정은 수다일 뿐" 주장

  • 입력 2001년 1월 2일 18시 29분


“구조조정은 국가 비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국가 비전이 없다.”

2일 재계 및 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최근 국내 경제계에서 ‘국가 비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 가고 있다.

손길승 SK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각 그룹이나 기업, 개인들도 비전을 갖고 사는데 최근 우리 사회는 국가의 비전이 없어졌다”며 “정치권에서 국민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 전반적으로 희망과 도전 의식이 현격하게 떨어졌다”며 “구체적이고 설득력있는 비전만 제시되면 한국인은 이를 실천할 능력이 있다”고 발언했다.

손회장은 더 이상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재벌 회장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우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LG 경제연구소 오문석 경제센터장도 최근 한 연구 보고서에서 “구조조정은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는 것일 뿐 미래를 겨냥한 비전은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정치권이나 대통령이 ‘한국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의 실패를 교정하는 구조조정만을 강조하다 보니 각 경제 주체들이 너무 움츠러들어 있으므로 구조조정을 통해 우리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를 구체적으로 가리켜야 한다는 것이다.

오센터장은 또 “과거와 같은 선진국 따라잡기 식(Catch―Up)의 경제에서는 비전 제시가 쉬웠으나 자본 상품 서비스 등 모든 경제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비전 제시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식기반 경제니 벤처 육성은 너무 막연하거나 지엽적이어서 국가 비전이 될 수 없다는 것.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도 “현 정부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 발전’과 ‘생산적 복지’정도인데 미국식 신자유주의와 유럽식 경제정책 철학의 기계적 결합의 성격이 짙다”며 “서로 상충되는 미국식과 유럽식을 어떻게 ‘화학적으로’ 결합시키겠다는 해법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어떤 독특한 방법을 거쳐서 어떤 특징을 갖는 선진국이 될 것인가’를 압축한 국가 비전이 필요하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최숙희 박사도 최근 발표한 원고에서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가 비전인데 최근의 혼란은 비전이 모호한 데서 오는 리더십의 공백 상태 탓”이라고 지적하고 “최소한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수준의 비전 제시라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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