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감 경기 28개월만에 최저

  • 입력 2000년 12월 5일 19시 09분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경기 지표가 28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업종별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 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12월 BSI가 68.0을 나타냈다고 5일 밝혔다. 이는 외환위기로 우리 경제가 최악의 불황에 빠졌던 98년 8월(66.0) 이후 최저치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앞으로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보는 응답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다는 뜻. 전문가들은 금융시장 불안과 이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에서 시작된 불황의 그늘이 마침내 실물경제의 활동주체인 기업인들의 심리에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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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은 기업 체감경기〓전경련 유재준 경제조사팀장은 “BSI의 절대치가 낮은 것도 걱정이지만 하락곡선의 기울기가 너무 가파른 점이 더 심상찮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7월과 8월 연속 91을 유지하던 BSI는 9월 105로 한때 호전됐지만 10월 92, 11월 81에 이어 12월 68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계절적 요인을 감안한 계절조정 BSI는 12월 71.3을 나타내 7월부터 6개월 연속 100 이하.

문제는 BSI 수치가 아직까지도 바닥에 이른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연구위원은 “자본시장이 붕괴 직전이고 제조업 공장가동률까지 떨어지는 추세임을 감안할 때 내년 1·4분기(1∼3월)에는 좀더 나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분야별로는 내수 BSI가 85.6으로 98년 8월의 7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내 내수부문이 경기위축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조업과 비제조업 가릴 것 없이 체감경기가 나빠져 음료 의복 조선 정보통신업 등을 빼고는 거의 모든 업종의 BSI가 100 이하로 떨어졌다.

▽기업들 투자축소 비상〓전경련은 “12월 체감경기가 악화된 것은 금융불안에 따른 자금경색 심화와 기업 채산성 악화,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지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허연구위원은 “그동안 막연히 체감경기가 안좋다고 걱정하던 것이 마침내 실제 지수로 확인된 셈”이라며 “금융경색 해소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현재의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경기위축에 대한 우려가 전 산업계에 확산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투자규모를 가급적 줄이는 방향으로 내년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A그룹 구조조정본부 임원은 “기업들의 불안 심리는 이미 내년 계획에 그대로 반영된 상태”라며 “일단 금융시장이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투자를 최대한 자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유팀장은 “기업들을 상대로 조사해보니 삼성 LG처럼 우량그룹 계열사들도 투자를 하기는 하되 시장유지에 꼭 필요한 분야에 한해 방어적으로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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