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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4월 21일 20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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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총선 이후 정부가 재벌개혁의 강도를 높여나가는 시점에서 재계가 정부 비판에 나섬에 따라 갈등국면의 장기화마저 예상되는 상황이다.
총선이 끝난 뒤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을 동원하여 황제경영처벌, 부당내부거래조사, 세무조사 등을 연이어 발표했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공정위의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 폐지 등으로 응수했다.
정부는 재계의 도전에 밀리면 개혁이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고 재계는 개혁공세에 순종하면 재벌 해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한다.
이에 따라 이번 갈등은 재벌개혁 진로를 둘러싼 정부와 재계의 마지막 힘겨루기란 측면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전방위적 재벌압박〓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은 21일 주요 재벌에 대한 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를 예고하고 재벌구조조정본부의 역할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 전경련의 정책개선 요구를 일축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날 30대 재벌그룹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 방침을 밝히고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에 대해서도 재계의 의견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재경부는 공식자료를 통해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의 이행상황을 점검해 추가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의 신자산건전성분류기준(FLC)에 대해 점검하고 가능성 없는 기업을 퇴출시키겠다”며 개혁 강화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재경부는 총선이 끝난 직후 재계가 30대 그룹 지정제 폐지와 구조조정본부에 대한 과징금 부과방침 재고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데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여소야대로 나타난 총선 결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재벌개혁 압박을 어물쩍 넘기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시각이다.
여기에서 뒤로 밀릴 경우 현 정권의 재벌개혁은 불가능해진다는 게 정부당국의 인식이다.
▽이제 할말은 하겠다는 전경련〓전경련 고위관계자는 “30대 그룹 지정제도에 대해서는 공정위도 재검토 방침을 밝힌 바 있다”며 “전경련 회장단의 요구는 그동안 여러 차례 건의해온 것을 종합한 것으로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구조조정본부에 대해서는 “그룹 전체의 전략을 짜는 참모본부가 있어야 한다”며 “정부도 이 같은 역할을 하는 참모본부를 두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기업지배구조만 해도 현재 제도개선이 이뤄진 만큼 이를 착근시키기 위해선 2, 3년 정도의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A그룹 관계자는 “4대 부문 개혁을 하면서 기업만큼 적극 실천한 곳은 없다”며 “금융과 공공부문은 무엇을 잘 했는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B그룹 관계자는 “개별 그룹 차원에서 정부정책에 반기를 들기는 어렵다”며 “전경련이 그동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만큼 이제부터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민경제를 생각해야 한다〓C그룹 관계자는 “정부가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재계의 갈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D그룹 관계자는 “이헌재장관이 정치적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며 “투신사 구조조정, 남북경협 등 엄청난 프로젝트가 앞에 있는데 재벌문제를 건드릴 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세무조사를 공개적으로 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국세청이 경제심리위축 등의 부작용을 제대로 검토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임규진·박원재·이명재기자> mhjh22@donga.com
◇총선후 정부와 재계간 갈등 일지
▽4월18일〓구조조정본부가 총수의 황제경영 창구로 이용되면 과징금 부과 등 시정명령을 내린다.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에 금융기관이 개입하면 계열사와 금융기관을 함께 처벌한다.(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
▽4월18일〓기업개혁이 미흡하다. 공정위는 기업의 선단식 경영을 없애고 상호출자를 엄격히 단속해야 한다.(김대중 대통령, 공정위에 지시)
▽4월20일〓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철폐해야 한다. 구조조정본부는 유지돼야 한다. 정부는 기업에 직접 간섭해선 안된다.(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
▽4월21일〓기업지배를 뒷받침하는 조직(구조조정본부)은 폐지돼야 한다. 기업의 추가적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겠다. 금융기관을 통한 철저한 기업경영 감시를 위해 금융감독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
▽4월21일〓5월부터 30대 재벌의 부당내부거래조사에 착수한다.(공정거래위)
▽4월21일〓현대 삼성 LG SK 등 4대그룹의 법인세, 주식이동조사에 착수한다.(국세청)
▽4월21일〓앞으로도 정부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개선방안을 건의하겠다. 시민사회에선 누구나 할 말을 할 수 있다.(전경련 고위관계자)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