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 '부익부 빈익빈'현상 갈수록 심화

  • 입력 1999년 9월 28일 18시 49분


기업 자금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대우사태 이후 투신권의 자금이 유입된 시중은행의 유동성은 어느때보다 풍부하지만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실적은 양극화되고 있는 것. 재무구조가 건실한 기업은 은행들의 대출세일 공세를 받을 정도지만 부채가 많은 기업은 시중은행의 대출 거부로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재무구조가 부실한 기업은 채권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한데다 증시침체로 증자마저 어려워져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며 사채시장에서 돈을 구하는 실정.

▽우량기업, 자금조달 쉬워졌다〓대우사태 이후 투신사에서 은행권으로 유입된 유동성은 대략 30조원대 규모. 대우채 환매에 따른 손실과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조정으로 은행권의 자금유통 여력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시중은행의 유동성은 어느때보다 풍부하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여유자금을 우량기업에 대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H은행 관계자는 “연말까지 자기자본비율 조정에 자신 있는 은행들은 대출을 통한 영업이익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대출선을 확보하기 위해 우량기업에 저가금리 공세를 펴고 있으며 심지어 다른 은행의 거래처를 빼앗으려는 쟁탈전까지 벌일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미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끌어내린 대기업과 영업실적이 우수한 우량 중소기업들은 증시침체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부채비율 기준을 달성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은행 기업대출 담당자들이 최근 대출세일을 위해 회사까지 방문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연말 자금사정 악화에 대비해 은행돈을 좋은 조건에 빌려 여유자금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실기업, 은행돈은 ‘그림의 떡’〓은행권의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적자상태에 있거나 재무구조가나쁜기업들은대출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 담보여력이 충분하더라도 여신상환능력에 따른 국제 여신건전성기준(FLC)에 미달하면 사실상 은행 대출이 막혀 있다.

더구나 증시침체로 증자 등의 직접금융이 어려워진데다 채권수요가 없어 높은 이자를 주고도 채권발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들은 IMF사태 초기 수준의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전문가들은 여신건전성기준에 미달하는 기업들이 연말까지 채권상환 자금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연쇄부도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상당수의 기업들은 이미 대금결제를 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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